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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의 화재 위험과 피해 저감 대책-2

Dr.risk 2024. 8. 16. 12:07

유호정 책임(화재보험협회 방재컨설팅팀, 미국 소방기술사)

지난 글에서는 공동주택의 화재 위험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알아보았고, 우리나라 공동주택 안전수준도 선진국과 비교하여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공동주택 안전대책 중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화재시 대응요령, 즉 어떻게 피난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 피난 대책

가. 화재 피난시 수반되는 위험

정부의 관련 통계에 의하며, 공동주택 화재시 대피 중 사망 또는 부상당한 인명피해가 4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 1 참고) 이러한 통계를 단편적으로 보면 쉽게 결론을 내릴수도 있지만, 대피를 해야 하는가 아닌가의 현장 판단이 무척 어려운 것이 문제이다.

[그림 1] 인명피해 현황, 출처: 화재 피난행동 요령(출처:정부 관계부처 합동 발간자료)

공동주택 연소확대 범위에 대한 통계를 보면 발화지점 또는 발화층에서만 머무는 화재가 90%에 가까우며 다수 층 연소확대의 경우는 1.2%(그림 2 참고)로 나온다. 이러한 분석을 본다면, 화재 발생시 타 층의 세대가 굳이 피난을 위해 세대 밖으로 나와야 하는 상황은 무척 적을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판단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 무척 어렵기에 대피 중 인명피해가 많은 것이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공동주택 연소확대 현황(출처:정부 관계부처 합동 발간자료)

나. 피난을 할 것인가? 일단 대기할 것인가?

아래의 사고들은 화재시 직면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1) 화재 대피 도중 연기, 열 노출

사례. 피난 과정에서 계단실 내 연기흡입으로 사망(2023.3.)

수원시 아파트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계단실로 연기가 확산된 상황에서 계단으로 피난하려던 입주민이 13층에서 연기흡입으로 사망함.
사례. 아래 세대 화재 확산으로 피난중 다수 사망(2023.12)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 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4층에서 생후 7개월 된 딸을 안고 뛰어내린 30대 가장과 10층 주민으로 가족을 대피시킨 뒤 윗층 계단으로 대피하던 30대 남성 등 2명이 숨졌으며, 30명이 부상당했다.

[그림 3] 저층부 화재로 상층부로 수직확대된 모습(23년 도봉구 **아파트 화재)

2) 대피시 잘못된 경로 진입

아래 사례는 옥상을 통한 피난경로상의 혼동으로 인한 아쉬운 사고인데, 긴박한 상황에서는 피난 동선이 아주 직관적이지 않다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사고 이후로 각 소방관서에서 유사한 구조의 옥상부를 대상으로 조치(그림 4)를 하도록 하고 있으나, 유지관리를 계속 신경써야 하는 사항이므로 안전관리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사례. 옥상 피난 시 옥상출입구 혼동 사례(2020. 12.)

군포시 한 아파트에서 화재로 피난하던 주민 2명이 옥상보다 한 층 더 높은 엘리베이터 기계실을 옥상 출입구로 착각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연기에 질식하여 사망

[그림 4] 승강기 기계실로 향하는 계단에 출입제한 조치를 한 경우

3) 대기하다 사망자 다수 발생

영국에서 발생한 24층 공동주택화재인 그렌펠 타워 화재시에 많은 사람들이 건물 내에서 머물렀으며, 이러한 초기대응은 일반적인 화재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외벽을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로 둘러싼 상태1)로 스프링클러설비도 없는 상태여서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간 후 건물 내부로 침투하면서 각 세대에 머물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화재시 일단 실내에 머무는 방식(stay put policy)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나 이 건물은 가연성 외장재, 부실한 소방설비 등으로 인하여 건물 전체로 연소확대될 기본적인 요건이 갖추어진 건물이었기에 이러한 참사가 난 것이다.

1)가연성 외장재로 인한 화재는 국내에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해운대 우신골드스위트, 울산 아르누보 등 다수가 존재한다.

[그림 5] 화재진압중인 그렌펠 타워 화재상황

다. 살펴서 대피

 소방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2019~2023년) 동안 아파트에서 일어난 1만4112건의 화재로 17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대피 중 발생한 사망자가 42명(24.1%)으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소방청은 화재 발생 시 ‘무조건 대피’보다 ‘살펴서 대피’로 행동지침을 변경했다.(그림 6 참고)

 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대피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판단 및 결정방법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단 화재경보가 울린 상태에서 화재가 주변에 발생했는지와 비상방송 등을 통해 어디서 발생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면 좋지만, 비화재보가 많은 국내 현실2)에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2022년 국정감사 관련 내용 중, 화재 경보기의 오작동으로 인한 비화재보 출동률이 99.8% (출처: 소방방재신문,https://fpn119.co.kr/184901)

[그림 6] 피난행동 요령[출처: 소방청]

표 1과 같이 화재시 대처에 대한 여러 경우를 산정한 Tree map을 보면 상당히 많은 수의 상황이 돌발적으로 닥쳐올 수 있어, 냉정한 판단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여진다.

[표 1] 화재시 대처 및 해당 위험성에 대한 Tree Map

예를 들어 아래쪽으로 피난시 예기치 못한 치명적인 상황을 맞닿드릴 수 있다. 연기의 확산경로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수 있지만 해당 건물 내에 있는 상황에서 판단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래의 사례는 하방으로 피난 시도시 사망한 사례이다.

사례. 하방 피난시 화재노출로 추락사(2006.12)

서울 강남구 대치동 s아파트 7층에서 불이 나 위층으로 불길이 번지는 바람에 8층에 사는 원모(57)씨는 아내(50)와 아들(25)을 잃었다. 이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화염을 견디지 못해 7층과 8층 사이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숨졌다.

라. 대피시 유의사항

화재시 대피를 하게 되는 상황을 미리 고민해본다면, 아래의 사항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거나 체크한다면 좋을 것이다.

1) 기본적인 대원칙

연기는 상승하므로, 아래층 화재가 아니라면 하향피난이 더 안전할 가능성이 크다. 즉 확실히 위쪽 층 화재라면 일반적인 화재의 경우 집 안에서 대기하는 것이 첫 번째 대응 방법이 될 수 있다.

2) 올라갈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

건물은 보안, 안전상 등의 여러 필요로 인하여 옥상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사는 아파트 옥상이 자물쇠로 시건되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보안장치로 시건되어 화재시 연동되어 개방되는 방식일 수 있어, 사전에 이를 체크해 볼 필요는 있다. 오래된 공동주택인 경우 옥상부가 아예 접근이 안되도록 자물쇠로 시건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근 준공된 건물들은 화재신호와 연동되어 개방되도록 한 곳이 많으므로 유사시 옥상부가 피난공간이 될 수 있다.

3) 세대 현관문 접근

세대 전용부에서 그 바깥으로 나가려면 일단 세대 현관문을 지나야 한다. 하지만 현관문으로의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관문 쪽으로의 피난이 여의치 않은 상황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 사고들이고, 내가 사는 아파트가 경량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기억해두는 것이 의미있을 수 있다. 참고로 경량칸막이는 '건축법시행령 제53조'에 따라 1992년 10월부터 공동주택 3층 이상 층의 세대 간 발코니에 경량칸막이를 설치해야 하며, 2005년 이후 시공하는 공동주택에는 칸막이를 설치하지 않으면 대신 대피공간이나 하향식 피난구(사다리)를 두도록 하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사례. 경량칸막이 사용 피난 사례

(2016. 2)부산시 아파트 7층 주방에서 화재발생 시 일가족 3명이 경량칸막이를 통해 이웃세대로 피난
(2019. 9) 전남 광양시 44층 통로에서 화재 발생 시 30대 여성이 6개월 된 아이를 안고 경량칸막이를 통해 이웃세대로 피난
사례. 현관문 접근 불가능하게 되어 실내에서 사망(2019.9)

광주시 소재 아파트 현관문 쪽 거실에서 전동킥보드를 충전하던 중 불이 나 현관문이 막혀 50대 부부가 피난하지 못하고 사망

[그림 7]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에 재실자가 피난하여 경량칸막이가 뚫려 있는 모습. (출처: 국제신문, 사진 부산시소방안전본부 제공)

4) 피난층 내 위험요소

피난층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병목 공간으로, 이에 대한 안전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 국내 건축법상에는 피난경로로서 건물 외부로 바로 나가는 피난동선 확보 규정이 없어 대부분 건물의 설계가 피난층 바닥(로비 등)을 지나서 피난구로 가는 구조이므로, 다양한 방해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회전문과 여닫이 문이 병렬로 설치되어 있는 경우 관리상 편의를 위해 여닫이문을 시건하여 놓는 경우가 있어 비상시 신속하게 여닫이문(출구)이 개방이 되어야 하며, 피난시 방해가 될 수 있는 집기, 비품, 가구 등의 배치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5) 고층 아파트의 피난

고층 아파트의 경우 피난층까지 가기에는 물리적, 체력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우를 상정하여 건물 중간중간에 대피층(공간)을 두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 공간을 활용한 사례가 삼환아르누보 화재인데, 이 건물은 초고층이 아니어서 대피층 설치 의무는 없지만 15층과 28층에 대피층을 두어 인명 피해를 막았다. 특히 28층 대피층(야외 옥상정원 구조)에선 먼저 도착한 일가족이 30층 창문으로 뛰어내린 초등학생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등 위층에 사는 갓난아기와 임신부를 포함해 10여 명을 구조했다. 3) 대피층이 미니 옥상 같은 야외형 발코니 구조로 설계돼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에 준공된 건물 중 초고층 건물(50층 이상)은 중간에 온전한 피난 및 대기가 가능한 피난안전구역이 의무화되어 향후 이러한 공간의 적절한 활용이 가능하다.

[그림 8] 구획된 공간에서 피난용승강기와 연결되고 안전설비가 갖추어진 피난안전구역

2. 글을 마무리하며

 두 편에 걸친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공동주택 상황을 살펴보고 우리의 공동주택 화재안전 수준이 일본 등 선진국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음을 보았다. 또한 최근의 안타까운 사고들을 교훈삼아 소방청과 관계기관들이 역량을 동원하여 좀 더 좋은 방법들을 찾아 개선방안들을 내놓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좀 더 안전한 공동주택이 만들어진다면 더욱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함께 열악한 여건 속에서 공동주택에서 묵묵히 안전관리를 위해 애쓰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참고문헌]2022년도 화재통계연감, 소방청국가화재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소방청화재 피난안전매뉴얼(아파트 관리자), 관계부처 합동화재 피난행동 요령(아파트입주자), 관계부처 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