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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건축물 '전성시대'…안전은 '사각지대'
Dr.risk
2014. 6. 5. 14:32
초고층 건축물 '전성시대'…안전은 '사각지대'
["잊지 말자 4·16" - '안전이 복지다' <2부>"안전은 시스템이다">]<7-1>화재에 취약한 초고층 건축물
- 소방 고가사다리차도 24층이 한계…와류·안개잦아 헬기구조도 힘들어 - 美·日 등 재난관리자가 안전 책임…국내 단기교육 비전문가 겸직 허다
#서울시내 49층 주상복합에 사는 60대 주부 김미영씨(가명)는 요즘 워낙 주변에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자 대피방법을 참고할 요량으로 관리사무소에 들렀다. 하지만 직원은 당혹스러워하며 "(화재 등의 사고시) 비상계단으로 가면 되지 않겠냐"는 말만 되풀이 할 뿐 구체적인 매뉴얼이나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김씨는 10년 넘게 이곳에 살았지만 대피훈련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김씨는 "대기업에서 지은 고가 아파트다보니 당연히 시스템이 잘 갖춰졌을 것으로 안심했는데 충격적이었다"며 "만에 하나 재난이 발생하면 속수무책 아니겠냐"고 답답해했다.
#서울시내 또다른 초고층 주상복합에 사는 30대 직장인 한재민씨(가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끔 있는 입주자 소방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참여가 거의 없는 것같다"며 "거의 꼭대기 층에 살고 있어 비상계단으로 1층에 가려면 30분은 걸릴 텐데 옥상문도 늘 잠겨있어 대피방법이 막막하다"고 말했다.국내 초고층(건축법상 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m 이상)이나 준초고층(30~49층) 건물들의 안전관리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매년 초고층 건물이 경쟁하듯 하늘로 치솟지만 정작 안전 대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2010년 발생한 부산 해운대 '우신 골든스위트' 화재사고는 초고층 건물의 취약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예다.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과 교수는 "초고층 건물은 화재발생시 소방대의 신속한 접근이 불가능하고 강풍 등에 의해 급속히 연소 확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상으로 피난동선이 길어지면서 막대한 인명·재산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실제 초고층 건물의 경우 화재발생시 외부에서 진압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소방차는 보통 15층 정도까지 물이 닿고 고가사다리는 18층까지 올라간다. 그나마 부산소방본부가 국내 최고 높이(72m)의 사다리차 2대를 보유 중이지만 이마저도 24층 높이가 한계다.구조헬기도 접근이 쉽지 않다. 초고층 건물 주변의 불규칙한 바람인 와류(渦流) 형성 및 안개·구름으로 인한 충돌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히 최근에는 꼭대기 층을 아예 전망대나 첨탑으로 만들어 헬기착륙장이 없는 경우도 있다.재난전문가들은 초고층 입주자들이 화재발생시 가장 우선할 일로 '피난안전구역'으로의 이동을 꼽는다. 하지만 국내에서 초고층(준초고층) 건물의 피난안전구역 설치를 의무화한 건축법안은 2012년 3월(2011년 12월)에야 시행됐다.즉 시행 이전에 지은 건물들은 안전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0년 8월 기준 30층 이상 건축물은 963개소로, 대부분 '안전 사각지대'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따라서 무엇보다 예방과 대비가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초고층 건물별로 특성에 맞춰 안전매뉴얼을 만들어 시스템화하고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대피법을 몸으로 익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지난 5월28일 우리나라의 '원조 초고층'인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선 1925명의 입주 직원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대피훈련이 진행됐다. 이론과 시범 위주 단순 소방훈련 교육이 아닌 실제 상황을 가정한 대대적인 체험식 훈련은 완공 약 30년 만에야 사실상 처음으로 이뤄졌다.한 입주사 직원은 "직접 몸으로 움직여보며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며 "다만 일부 직원은 업무가 바쁘다며 참여하지 않았는데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박형주 가천대 건축대학 교수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초고층 건물마다 마치 '공항관제탑'처럼 각자 책임을 맡아 사전 예측해 관리를 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겸직으로 단기교육을 받은 이들이 형식적인 관리를 맡고 있다"며 "종합적으로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미국 초고층의 경우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EAP(Emergency Action Plan·비상대처계획) 담당자가 층별로 전담영역을 맡아 책임진다. 국내에서도 초고층 특별법에도 총괄재난관리자를 두도록 돼 있지만 기존 전기·기계·건축 등의 기술사들이 중앙소방학교에서 사흘간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증이 주어진다.한 소방당국 관계자는 "기업들이 인건비 때문에 전담 관리직원을 두기 부담스러워 하는 게 현실"이라며 "안전이 결국 투자라는 관점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정부 내에서도 현재 초고층 관리·감독이 건축(국토교통부)과 화재(소방방재청) 등으로 분산돼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올 하반기 일선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피난교육이나 대응능력 개선사항을 보다 구체화해 내년 중 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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