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선을 넘어 다급하게 현장으로 출동하는 소방차 © 소방방재신문 자료사진 | |
[FPN 이재홍 기자] = 화재 발생 시 신속한 초기 대응을 위해 설정한 골든타임이 논란을 빚고 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무리한 출동 강요로 소방관들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본래 골든타임은 구급대나 의사들이 사용하던 말이다. 일반적으로 심정지 상황이나 순환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초기 시간을 의미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 사회에서 골든타임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이전보다 확대됐다. 소방에서도 화재의 연소 확산속도와 피해규모가 급격히 증가하는 5분을 골든타임으로 설정하고 이 시간 내 현장도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화재의 양상만으로 설정한 골든타임에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현장도착이 늦어지는 데는 물리적 거리나 차량 정체 등 외부적 요인도 많지만 일괄적인 기준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국 1인 지역대 65곳… 관할 면적만 5천㎢ 넘어
골든타임의 현실성 문제는 국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임수경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1인 지역대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 1인 지역대는 65곳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전라남도 36곳, 강원도 14곳, 경상북도 14곳, 부산 1곳으로 나타났다.
이들 1인 지역대가 관할하는 면적은 무려 5,231.6㎢에 이른다. 지리산 국립공원(440.49㎢) 약 12배에 달하는 면적을 고작 65명의 소방관이 관할하는 셈이다. 임수경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논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 국정감사에서는 안전행정위원회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인력부족을 이유로 지역대를 폐쇄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진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폐쇄된 지역대 수는 189개에 이르며 그 기간 폐쇄지역대 관할지역에서는 3,259건의 화재가 발생해 91명의 사상자와 306억7천만 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다. 구조ㆍ구급 상황까지 더하면 출동 건수는 14만 6,854건(구조 3만 2,779건, 구급 11만 823건)에 달했다.
이렇게 지역대가 폐쇄되며 현장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경북의 경우 지역대 폐쇄 전 5.15km 정도였던 평균 출동 거리는 11.58km로 늘어났다. 환산하면 출발부터 시속 110km로 달려도 6분 이상 걸리는 셈이다. 2015년 6월 기준 경북의 화재 시 5분 이내 도착률은 34%에 그쳤다.
▲ 아파트 내 소방차 전용 공간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 © 소방방재신문 | |
농촌만 문제? 도시 지역 고충도 만만찮아…
도시의 소방관들도 고충을 토로한다. 농촌보다 물리적인 출동 거리는 짧지만, 기본적으로 차량정체가 심한 데다 현장 진입이 어려운 구간도 많다는 것이다.
소방차 길 터주기 홍보활동이나 단속 등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차량정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좁은 길이나 낮은 문주, 건물 앞 주차 시스템 구조물 등으로 인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엔 방법이 없다.
이렇게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지역은 전국적으로(지난해 기준) 1,600곳에 달한다. 이 중 서울과 부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만 47%(서울 473곳, 부산 273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조건 빨리빨리… 소방관 안전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며 무리한 현장 출동을 강요하다 보니 정작 소방관들의 안전은 뒷전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소방차의 교통사고는 최근 5년 사이 51.7%나 증가했다.
서울의 한 소방관은 “안전센터 앞 차량 정체가 심해 무리하게 출동하려다가는 안전사고 위험이 상당히 크다”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인명피해로 돌아올 수 있는 만큼 현실을 직시한 골든타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골든타임 사수를 위해 출동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요원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빠른 출동만을 강조하기 전에 할 수 있는 여건 조성도 병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기도의 한 소방관도 “일사불란한 체제를 구축한다고 본서 상황 체제를 방재센터 일원 체제로 전환했지만, 오히려 출동 시 골목, 골목 안내하던 지령이 사라지면서 운전요원의 지리 숙지 정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서울소방재난본부의 현장지휘대 성과평가 항목. 도착 시간에 따른 점수가 배정되고 순위가 매겨진다. © 소방방재신문 | |
골든타임 문제 개선하겠다더니, 평가에는 '뒷짐'
골든타임 내 도착률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은 현장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점수를 매기고 관서 평가에 활용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국민안전처는 현행 골든타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달 14일부터 TF팀을 구성해 제도개선에 나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점수를 매겨 관서 평가에 활용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현재로썬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전국에서 일괄적으로 적용하던 5분 규정을 지역별 거리와 상황 등을 고려해 차등화할 방침”이라며 “올 연말까지 골든타임을 현실적으로 정비해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시간 측정 평가제에 대해서는 “시간을 측정해서 점수를 매기는 건 보다 빠른 출동을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의 목적이었다”며 “5분으로 규정된 골든타임 제도가 현실적으로 개선되면 그 부분도 자연히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선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더욱 거센 불만이 나온다. 현행 골든타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선하겠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리한 골든타임을 사수하겠다는 이중적 태도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도개선에 앞서 무리한 규정에 근거한 평가제부터 중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 화재진압업무를 담당하는 한 소방관은 “모든 소방관이 현장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려고 하지 일부러 늦게 가는 경우는 없다”며 “안전처 스스로도 비현실적이라 인정하면서 5분 출동 평가는 왜 지속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