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법령 제정작업 한창인데… 점검 면제조항 두고 타당성 논란
‘화재예방안전진단’ VS ‘소방시설 자체점검’ 동등 수준 가능할까
소방시설관리업계 “성격 자체 다른 진단으로 점검 대체는 문제”
하위법령 마련에 고심하는 소방청… 논란 진화 해소책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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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영 기자] = 올해 12월 시행을 앞둔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화재예방법)에 따라 새롭게 도입되는 ‘화재예방안전진단’ 제도의 자체점검 면제 조항을 두고 타당성 논란이 거세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화재예방법은 ‘소방기본법’과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분산ㆍ규정됐던 화재 예방에 관한 내용을 통합해 별도 제정된 법률이다.
독립적인 예방 법률로 국민이 관련 규정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소방 예방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이 대거 담겼다.
이 법률에선 현행 소방특별조사 명칭을 화재안전조사로 변경하고 조사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화재경계지구의 명칭을 화재예방지구로 변경해 시ㆍ도지사가 소방시설 등 보강 필요 예산을 지원하는 근거도 마련했다.
또 소방청장이 화재안전 관련 법령이나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개선을 위한 ‘화재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대형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는 착공부터 사용승인일까지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토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도 특급, 1급 대상물에는 소방안전관리자 겸직(전기나 가스안전관리자 등)을 금지하고 불시 소방훈련을 도입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특히 법률에선 철도나 공항 등 국가기반시설로 분류되는 ‘소방안전 특별관리시설물’에 대한 화재예방 정책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사회ㆍ경제적으로 피해가 큰 시설물은 특별관리시설물로 지정하고 집중관리하는 내용이다.
특별관리시설물로는 공항과 철도시설, 항만, 문화재, 산업기술단지, 산업단지, 초고층 건축물ㆍ지하연계 복합건축물, 1천명 이상의 영화상영관, 전력용ㆍ통신용 지하구, 석유비축시설, 천연가스 인수기지ㆍ공급망, 전통시장 등이 포함된다.
앞으로 이 같은 특별관리시설물의 관계인은 한국소방안전원 또는 소방청장이 지정하는 화재예방안전진단 기관으로부터 정기적인 진단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11월 30일 제정ㆍ공포된 이 법률은 통일된 법체계를 확보하고 그간 대형 사고를 통해 드러난 제도적 미비점도 크게 개선할 거란 기대를 받는다.
하지만 법 제정으로 신규 도입되는 ‘화재예방안전진단’ 제도가 논란이다. 진단을 받는 대상물의 해당연도에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면제받도록 한 법률 조항 때문이다.
실제 법률에선 시행령에서 정한 특별관리시설물이 안전진단을 받는 연도에는 소방훈련과 교육,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근거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심화되는 논란을 <FPN/소방방재신문>이 집중취재 했다.
새로 도입되는 화재예방안전진단 제도는?
법률에선 ‘화재예방안전진단’을 화재 발생 시 사회ㆍ경제적 피해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하는 소방대상물의 화재위험요인을 조사하고 그 위험성을 평가해 개선대책을 이행토록 하기 위한 제도로 정의하고 있다.
올해 12월 1일 본격 시행되는 이 제도에 따라 하위법령에서 범주가 설정되는 해당 대상물은 한국소방안전원이나 소방청장이 지정하는 진단기관으로부터 정기적인 진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진단 과정에선 ▲화재위험요인 조사 ▲소방계획 및 피난계획 수립 ▲소방시설 등의 유지ㆍ관리 ▲비상대응조직 및 교육훈련 ▲화재 위험성 평가 등을 받게 된다.
이 진단 결과는 소방관서장과 대상물 관계인에게 제출되며 결과에 따라 보수ㆍ보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소방관서는 관계인에게 조치를 명할 수 있다.
특별관리시설물에 대한 전문기관의 화재위험성 평가와 조사를 통해 안전 개선책을 유도하는 등 주요시설에 대한 소방안전관리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지난해 11월 30일 관련 법률 공포 이후 하위법령 제정작업에 돌입한 소방청은 이달 말까지 운영하는 TF를 통해 법 시행일인 올해 12월 이전까지 관련 하위법령을 제정하게 된다. 진단기관의 자격 기준이나 진단 방법, 대상물의 범주, 진단 주기, 수수료 등 구체적인 형상이 설정될 전망이다.
화재예방안전진단 VS 소방시설 자체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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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포된 법률에 따라 앞으로 ‘화재예방안전진단’을 받는 대상물은 그해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안 받아도 된다.
아직 안전진단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하위법령의 형상은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률에서 진단 대상물의 해당연도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면제하는 근거가 이미 마련돼 있어 진단 시 점검이 면제되는 건 불가피한 상황이다.
‘소방시설 자체점검’ 제도는 모든 건축물을 대상으로 소방관서가 실시해 온 ‘소방검사’ 제도의 한계성을 보완하고 민간 차원의 자율적 소방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1995년 도입(점검업체 의무점검)됐다.
소방조직의 전담인력 부족과 전문성 부재 문제를 해소함과 동시에 전문인력을 보유한 전문업자의 점검을 의무화하면서 건축물의 소방시설 안정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소방에선 이 자체점검 제도의 실효성 강화를 목적으로 오랜 기간 제도를 정비하고 관리ㆍ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등 꾸준한 제도개선을 추진해 왔다.
‘작동기능점검’과 ‘종합정밀점검’으로 구분되는 이 자체점검 제도에 따라 소방시설 등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작동 점검부터 소방시설별 주요 구성부품 또는 구조가 관련 법규에 적합한지를 건물 규모에 따라 1회에서 2회씩 의무적으로 점검한다.
논란 이어지는 자체점검 면제조항…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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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시설관리업계는 물론 소방예방행정을 담당하는 소방공무원조차 이 면제조항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주요시설의 세밀한 화재안전성 평가와 계획 등을 확인하는 컨설팅 개념의 안전진단 제도를 도입하는 정책 방향에 대해선 그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안전진단이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면제할 정도의 수준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진단이라는 특성상 소방시설 점검과 개념 자체가 다르고 법률 내용상 기존 자체점검 이상 수준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문을 낳는다. 또 진단 부실 시 뒤따르는 책임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방시설 점검업계는 대규모 공항이나 발전소, 대형 특수공장 등에서 실시하는 현행 자체점검과 비교할 때 안전진단이 이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소방시설점검 업계 A씨는 “특별관리시설물로 분류되는 인천공항 같은 경우 한 해 평균 관리사 2명과 보조인력 8명을 8~9개월간 교대로 투입해 인일(人日, man-day) 1천일을 넘게 소방시설을 점검한다”며 “안전컨설팅 개념의 진단으로 소방시설의 유지 상태를 점검처럼 세밀하게 확인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B 씨는 “안전진단을 자체점검과 유사하게 장기간 수행하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진단비는 줄어들 것”이라며 “대상물은 안전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결국 화재 안전성이 저해돼 진단제도 도입 취지가 상실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점검 제도에서 준수해야 하는 배치기준과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C 씨는 “소방시설의 자체점검은 정해진 인력 배치기준에 따라 적정 인력과 점검 일을 산정해 투입하고 신고한다”며 “최소한 안전진단으로 점검을 대체하겠다면 동등 수준의 배치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부실 진단 시 수행기관의 책임 부재 문제도 논란거리다. 전문기관으로부터 ‘화재예방안전진단’을 받은 대상물에서 소방시설의 유지관리 부실 문제가 발견되면 과연 자체점검 제도에 준하는 엄격한 처벌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이다.
점검업계 D 씨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정해진 배치기준에 따라 신고를 하고 점검 이후에는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을 만큼 영업정지와 전문인력 자격정지 등 강력한 처벌 근거로 관리ㆍ감독한다”며 “안전진단이 이와 동등한 수준의 감독 체계 없이 책임 또한 뒤따르지 않는다면 진단이라는 편안한 먹거리를 특정 수행기관에 제공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그 점검 수행 과정의 부실이 확인되면 관련 자격자인 소방시설관리사는 경고, 자격정지 또는 취소되고 관련 점검업체 역시 영업정지와 등록 취소 처분을 받는다. 게다가 화재 사고 피해가 생겼을 땐 경찰 조사에 따른 관련 인력과 사업자 처벌을 피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시행을 앞둔 ‘화재예방안전진단’ 제도는 법률상 거짓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지정받거나 진단 결과를 소방관서 또는 관계인에게 제출하지 않은 경우, 업무정지 기간에 진단 업무를 한 경우 등에 대해서만 기관지정 취소 근거가 마련돼 있다.
진단을 받은 대상물에서 점검 부실성이 확인되더라도 진단기관을 견제할 수단이 마땅히 없는 셈이다. 의무 진단 수행기관의 권한과 수익은 보장하면서도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오랜 기간 소방예방업무를 수행해 온 소방공무원 E 씨는 “하위법령이 아직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았지만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건물의 소방시설 성능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 이행되는 게 필요하다”며 “진단제도를 현재 소방시설 점검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방청, 하위법령 마련 고심 중… 논란 진화될까
‘화재예방안전진단’ 제도는 법규 위주로 진행되는 기존 시설점검 체계에 더해 인적요소와 피난, 비상대응 체계 등 종합적인 화재위험요인을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주요시설의 화재안전성을 높여줄 거란 기대가 높다.
그러나 안전진단이 최소한의 법적 소방시설 의무점검의 수준을 저해하는 등 악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 논란은 법률에서 면제 근거 조항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조짐이다.
국회를 통과한 해당 법률이 아직 시행조차 안 된 시점에서 개정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자체점검 면제조항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현재로선 안전진단 제도의 구체적 내용을 담은 하위법령의 형상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위법령 정립을 추진 중인 소방청에 따르면 의무 진단 대상을 현재 법률에서 정해진 ‘특별 소방안전관리 대상물’ 중 고위험 시설 일부로 한정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2021년 예방소방행정 통계에 따르면 ‘특별관리 시설물’로 분류되는 대규모 주요시설은 전국에 5천 개소가 넘는다. 소방청은 이 시설물 중 일부를 안전진단 대상 범주로 설정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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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진단 결과를 거쳐 평가된 각 등급에 따라 진단 주기를 차등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다. 또 소방시설 자체점검 면제 근거를 고려해 종합정밀점검 수준의 시설점검을 진단 범위에 포함하는 방향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방향은 공개되지 않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하위법령 제정안은 이르면 3월 중, 늦어도 4월 안에는 입법 예고될 예정이다. 하위법령에 관련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골자가 마련될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