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N 이재홍 기자] = 지난해 1월 10일 발생한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사고는 막대한 인명ㆍ재산피해와 함께 우리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남겼다.
당시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은 건물의 가연성 외장재로 옮겨붙어 삽시간에 타올랐다. 1층과 2층을 관통하는 통신선로에는 내화충전재가 설치되지 않아 화염과 연기를 더욱 확산시켰고 2층부터 설치된 방화문 역시 건축법 규격에 미달하는 제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5명이 숨지고 125명이 부상한 대형사고였다. 정초부터 발생한 참사는 그 원인의 대부분이 비정상적인 건축물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건축물 화재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더 이상 화재안전을 소방법령과 시설에만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갈수록 대형화, 복합화돼가는 건축물의 궁극적인 안전을 위해선 건축법령 및 건설기술과의 유기적인 조화가 필수라는 것이다.
건설기술, 화재안전 돌아보다
▲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전경 © 이재홍 기자 | |
한국건설기술연구원(원장 이태식, 이하 건설연)은 지난 1983년 구조와 도로, 지반, 환경 등 건설 전 분야에 걸친 기술개발과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건설연은 2002년부터 산하에 화재안전연구소(당시 화재안전연구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초고층 건축물과 대규모 지하공간, 장대도로터널 등 대형 구조물이 늘어나면서 건축물 화재안전 기술의 체계적인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2006년 문을 연 화재안전연구소는 올해로 설립 10년을 맞았다. 8개의 실험동(실물화재실험동, 고성능내화실험동, 재료연소특성실험동, 구조재료열특성실험동, 제연배연실험동, 터널실험동)을 갖춘 연구소에서는 오늘도 40여 명의 전문 연구원들이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국민체감형 화재안전 연구의 비전 제시
▲ 화재안전연구소 내 고성능내화실험동의 모습 © 소방방재신문 | |
화재안전연구소는 설립 이후 화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와 기술개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화재안전은 건축물을 구성하는 재료부터 구조, 소방, 제ㆍ배연, 피난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가 필요한 종합기술이다. 이 전제하에 우수한 연구진과 세계적 수준의 다양한 실험시설을 갖추기 위한 노력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 화재안전연구소는 현재 매년 국가사업을 비롯한 30~40건의 중대형 연구개발사업과 약 1,500건의 각종 시험업무를 수행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화재안전기관으로 우뚝 섰다.
축적된 연구성과로 정책 수립 지원도
오늘날 화재안전연구소의 연구성과는 안전을 위한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07년 서해대교 차량화재 실험과 이듬해 숭례문 화재 실험 등 화재안전연구소에서 진행해온 주요 화재사고의 실규모 재현실험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 유사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지난해에는 국토교통부가 추진한 건축물 안전강화 종합대책을 통해 그간의 연구성과를 정책에 반영하는 등 건축물 화재안전 성능 향상을 위한 법령과 기준의 재ㆍ개정도 지원하고 있다.
화재안전은 기본, 신성장 산업 발굴에도 앞장
▲ 화재안전연구소 연구진들의 모습 ©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제공 | |
화재안전연구소는 이제 세계 최고의 화재안전 종합연구소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국제포럼과 공동연구, ISO TC 92(Fire Safety) 국제표준화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국내 최초 UL1479(Fire stop) 시험 수행기관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KICT X-Project 추진 계획을 수립했다. KICT X-Project는 각각의 연구소에서 수행되는 전문 연구 결과를 융합해 화재안전연구소에서 복합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낙후된 화재안전시스템 기술 경쟁력을 제고하고 이를 산업화 유도와 신성장 동력 창출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인터뷰] 이태원 화재안전연구소장
“여러 분야 전전했던 이력… 융복합 연구에 큰 도움”
2006년 화재안전연구센터 설립 당시 초대 센터장을 맡았던 이태원 소장은 지난해 강소형 연구소로 재탄생한 화재안전연구소에 돌아왔다.
부임 후 이 소장이 중점 추진 목표로 설정한 것은 ICT 융합 기반의 지능형 화재안전시스템 개발이다. 여기에 건축물과 시설물의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을 더함으로써 화재안전시스템 분야의 기술경쟁력을 제고하고 신성장산업 발굴ㆍ육성에도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는 이태원 소장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개방형 플랫폼 기반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이 바탕이 됐다. 현재는 건물 에너지 관리와 화재안전 관리를 통합하는 Smart-E2MS 개발을 추진 중으로 연구소 건물에 실증을 위한 통합 관제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융복합 연구에 주력하게 된 이유를 묻자 이 소장은 “최근 건축물들이 급속도로 대형화, 복합화되고 있는 추세에서 궁극적인 화재안전을 담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의 화재안전 시설은 철저한 법의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규정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건물이나 시설의 부위별 성능을 개별적으로 규제하던 것에서 이제는 전문가와 시스템에 의한 종합관리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본래 이태원 소장의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1991년 박사학위를 받고 건설연에 들어왔지만 당시만 해도 토목ㆍ건축 분야가 중심이었던 건설연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여러 분야를 전전해야만 했다.
이 소장은 “힘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던 이력이 융복합 연구를 하고 있는 지금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웃었다.
지난해에는 유독 방화용 건축자재의 불량 파문이 거셌다. 합격 판정을 받고 유통된 내화충전재와 방화문에서 성능 미달 제품들이 적발된 탓이다. 방화용 건축자재의 시험과 인증업무를 맡고 있는 건설연 화재안전연구소에도 과제가 주어졌다.
이태원 소장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제도적 관점에서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건축절차 중 설계와 시공, 감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우리 연구소에서는 부실시공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기술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현장에서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의 연구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며 “해외 기관 벤치마킹 등 정확한 화재조사와 원인 규명을 위한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무원과 기술자, 관련 기업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 운영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화재안전과 관련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관심을 이끌어내겠다는 설명이다.
이 소장은 “법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은 사람”이라며 “안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안전을 비용으로만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화재안전과 융복합 시스템을 연구해온 이태원 소장은 각 정부부처와 전문기관에 분산, 관리되고 있는 화재 예방과 진화, 피난안전에 관한 규정이 통합 운영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만약 어떤 건축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진화가 담보된다면 예방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도 있는 것”이라며 “획일적인 규정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과다한 투자로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물론 이 같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관련 기술의 개발과 진화가 필수 전제”라면서 “제도를 이끌 수 있는 기술의 연구와 개발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