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최근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개편에 대한 '위'로부터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응급의학회에서도 응급구조학회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는 해당 사안에 대해, 먼저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원칙'과 '절차'에 대한 합의를 거쳐 투명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응급의료에서 병원 '도착 전(前)'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응급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제일 먼저 환자를 만나 응급 처치를 실시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은 질병관리본부의 자료를 토대로 응급구조사의 제한적인 업무범위로 인해 구급차에 탑재된 심폐소생 응급의약품이 사용도 못하고 폐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 역시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응급구조사의 제한된 업무범위로 인해 사람을 살리고도 무면허 의료행위로 벌금을 무는 등 현실에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업무범위 확대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 속에 지난 2000년 이후로 한 번도 재조정된 적 없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이제는 현실에 맞게 조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조금씩 형성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응급의학계에 따르면 이미 올해 초부터 보건복지부와 소방당국 간에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변경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소방에 초음파를 배포하는 등 이미 응급구조사 업무 확대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논의에서 당사자인 응급구조학회 및 전문가 단체인 응급의학회가 배제되고, 그 과학적 근거 및 현실적 필요성에 대한 연구 및 논의가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이다.
지난 10월 19일부터 열린 대한응급의학회 학술대회에서도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개편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이 언급되며 학회의 우려가 제기됐다.
전라도 지역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A 교수는 "구급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전국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효율적인 배치와 운영을 통한 보유 자원의 합리적 운영이 필요하다"며 "이에 따라 정부 중심으로 업무범위 개편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대가 변했는데도 20여년 간 업무 범위가 변하지 않은 응급구조사에 대해 질적 향상의 측면에서 확대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다만, 업무 범위를 넓히는 것이 실제 응급구조 상황에서 효과적인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당사자와 전문가 집단 간의 연구 및 공동 논의를 통해 응급의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 범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학적 근거 및 사회적 합의가 부실한 상황에서 직역의 업무 범위를 확대할 경우, 환자의 진료결과에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위해를 줄 위험이 있으며,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거나, 직종 혹은 조직 간의 분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 지역 모 대학병원 B교수는 "선진국의 구급대는 중증외상 사례에의 구급차 현장체류 시간을 7-10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몇몇 외상환자의 생존사례에도 불구하고, 전체 외상환자의 생존율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캐나다 퀘벡에서는 중증외상에서 의사출동을 폐기하기도 했다. 현장에서의 온갖 의료행위가 사망률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시대에 맞게 현실화 할 필요성은 있지만, 그 업무범위 설정에 있어 응급의학 및 응급구조학 학계의 합의를 통한 '원칙'을 설정하여 절차적 정의에 맞게 합리적인 업무범위를 설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B교수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원칙과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소방이 독점하고 있는 원시 데이터의 공개가 바탕이 돼야 한다"며, 나아가 "위에서부터 논의되고 있는 응급구조사에 대한 업무 범위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공개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 및 절차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