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Ⅱ] 한국전력 왕십리변전소 불량 소화설비, 예견된 일이었나 | |||||||||||||||||||||||||
전문가들 “가스소화설비 신뢰성 확보 시급하다” | |||||||||||||||||||||||||
- 신뢰성 잃어가는 가스소화설비, 문제는 무엇인가 - 최초 적용 과정부터 성능 확보 반드시 이뤄져야 - 시설 특성조차 고려 안되는 우리나라 소화설비 - 형식적인 유지관리 만연… 실질적인 관리 방안은?
지난 10일 본지(617호)에서는 보도된 ‘한국전력 왕십리변전소 화재, 엉터리 소방시설이 ‘火’ 키웠다!‘ 기사와 관련해 소방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소화설비의 불량작동은 예견된 일이었고 만일 소화설비가 정상 작동했더라도 당시 화재를 초기 진압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가스계소화설비의 실정과 시설물 특성을 무시한 무차별적인 소화설비의 채택 실태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연 소방관련 전문가들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가스계소화설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본지는 이번 왕십리변전소 화재를 계기로 우리나라 주요 시설에 설치되는 가스소화설비에 대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소화설비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방안은 없는지 살펴본다. 이번호에서는 국내 가스소화설비의 적용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과 가스소화설비의 적용 실태, 그리고 유지관리 과정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사항들을 점검해 보고 이후 ‘연속기획’으로 국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가스소화설비의 세부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볼 계획이다. (편집자 주) “예견된 일”, “소화 불가능” 도대체 왜?
이는 우리나라 가스소화설비의 적용 실태와 변전소라는 시설물의 특성까지 고려할 때 보이지 않는 많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 중 첫째는 가스소화설비의 최초 적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가스소화설비의 성능 확보를 위해서는 소화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충분한 검토 과정 없이 설치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시설물의 특성은 배제한 채 마치 가스소화설비가 ‘만사형통’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면서 무차별적으로 가스소화설비만을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세 번째는 가스소화설비의 최초 설치 이후 설비 미흡한 유지관리는 설비 자체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가스소화설비, 신뢰성은 소화농도 유지가 관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소화가스의 농도 유지 가능성이다. 가스소화설비는 소화약제방출시 방호구역내 충분하게 소화가스 농도를 유지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호구역 내 가스 누설 부위가 있으면 설계된 소화농도를 유지할 수 없고 이 경우 화재의 재발화가 불가피해 결국에는 화재 자체를 진압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소화가스의 농도 유지시간을 최소 10분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가스계소화설비는 소화농도 유지시간을 확인하는 규정이나 사전 절차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소화설비의 신뢰성을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NFPA(미국방화협회. 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lation)의 경우 가스계소화설비가 설치되는 구역에는 기밀도시험을 통해 가스 누설량과 누설면적을 확인하고 해당 방호구역의 소화농도 유지 시간을 계산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시공 이후에도 소화설비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1회 이상 이 같은 시험을 하도록 권장한다.
이러한 기밀도시험을 도어팬 테스트(Door Fan Test)라 부르는데 쉽게 말해 문에 송풍기 같은 것을 달아 방호구역에 바람을 불어 넣거나 빼면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개구부의 면적을 확인하고 이 과정을 통해 도출된 값을 근거로 적정한 설계농도의 유지 여부 등 실질적인 소화성능의 확보 가능성을 판단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스계소화설비는 소방관련법에 따라 강제적으로 설치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설계농도 유지 여부는 면밀하게 파악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대상물의 경우에만 육안으로 개구부를 고려해 일정량의 소화약제를 추가하는 등 주먹구구식의 구시대적인 방식을 준용하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주먹구구식의 방법으로는 가스소화설비의 실질적인 소화성능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소방시설의 신뢰성에 따라 보험요율을 차등 적용하는 미국의 화재보험사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설치된 가스소화설비의 신뢰성은 인정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변전소 변압기실의 경우도 한쪽 벽면이 방화셔터로 구성되거나 천장 등 공간 자체의 가스누설 우려가 크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화농도 유지시간의 사전 검증을 거치지 않은 현재의 가스계소화설비로는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소화설비, 시설물 특성은 ‘나 몰라라’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테스트만을 거친 국내 가스소화설비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왕십리변전소 화재는 새어나오는 절연유에 불이 붙으면서 지속적으로 분출되는 유류화재의 형상을 보였고 이 화원의 강도는 일반화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이처럼 특수한 유형의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방호 대상물에 따른 소화성능 검증을 거쳐 적정한 소화설비를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소방관련 한 전문가는 “절연유 화재의 특성은 잠열로 인한 재발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한번만 방출되는 가스소화약제로는 열을 내릴 수가 없다”며 “순간적으로 불이 꺼졌다 할지라도 재발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냉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절연유로 불이 옮겨 붙기 전에 가스소화설비가 화재를 진압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이미 절연유에 불이 붙었을 때는 실질적인 냉각 소화에 효과적인 포소화설비 등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가스소화설비 설치가 불가피할 경우에는 2중, 3중 이상의 예비용기(리저브시스템)를 갖추거나 포소화설비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전소는 현행 소방관련법에 따라 ‘물분무등소화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시설물이다. 물분무등소화설비로는 물분무, 미분무, 포, 가스, 분말, 강화액 등 다양한 소화설비가 존재하고 있지만 설치 대상물 대부분은 가스소화설비만을 채택하는 경향이 크다. 이처럼 건축물이나 시설물의 특성을 배제하고 무차별적으로 가스소화설비만을 채택하는 것은 결코 현실적인 대비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허술한 유지관리가 부르는 ‘불량 소화설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스소화설비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허술한 유지관리 실태다. 이는 가스소화설비가 설치된 건축물에 불이나면 해당 설비를 납품한 제조사나 기술자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드는 주 원인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가스소화설비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시공이나 감리, 점검 과정에서 면밀한 검사와 기능시험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가스계소화설비의 점검은 최초 감리 이후 대개 소방시설을 전문으로 점검하는 ‘소방시설관리업체’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민간 전문 업체를 통해 이뤄지는 점검은 1년에 한 번(종합정밀점검)이 고작이고 이 과정조차 형식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가스소화설비가 설치된 해당 시설물의 관리자를 통해서도 이뤄지지만 관계자의 전문성 부재로 인해 면밀한 점검을 기대하기란 힘든 실정이다. [소비자 포커스] 가스소화설비 점검, 제대로 하려면? 전문가들은 가스소화설비의 점검 사항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소화약제량 검사 ▲기동라인 점검 ▲체크밸브 점검 ▲기동용기 점검 ▲방호구역 점검 등을 꼽는다. 한국전력 왕십리변전소 불량 소화설비 사태와 같은 불상사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실질적인 점검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화약제량 확인 = 현행법상 가스소화설비의 소화약제는 저장용기의 약제량 손실이 5%를 초과하거나 압력손실이 10%를 초과할 경우 재충전하거나 저장용기를 교체하도록 규정(불활성가스 청정소화약제는 압력손실5% 초과시)하고 있다. 저장된 소화약제량은 화재시 해당 방호구역에 방출돼 소화농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약제량 부족은 설비의 신뢰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소화약제량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소화약제 저장용기에 부착된 표시사항을 확인하고 용기의 무게 측정을 통해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동라인 확인 = 우리나라 대부분 가스소화설비의 기동방식은 가스압식을 채택하고 있다. 화재신호 시 기동용기의 솔레노이드 밸브를 동작시켜 기동용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게 되고 이 가스가 이동해 선택밸브와 소화약제 저장용기의 밸브를 열어 주게 되는데 이러한 기동용 가스(이산화탄소)의 이동 경로가 바로 ‘기동라인’이다.
특히 점검시 용기의 니들밸브를 분리하고 질소나 압축공기를 사용해 기동라인의 누기시험과 니들밸브의 동작시험을 수행하면 오시공이나 누기, 니들밸브의 동작 여부 등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초 설계나 시공시 기동라인을 스테인리스관 또는 고압호스로 적용하거나 방출되는 소화약제의 여압을 이용해 한 번 더 니들밸브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기동라인에 리턴 배관을 적용하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체크밸브 방향 확인 = 왕십리변전소 화재시 일부(5병)의 소화약제 용기가 방출되지 않은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많은 전문가들이 기동라인(동관)에 설치된 체크밸브의 시공 오류를 원인으로 추정한다. 이는 실제 가스소화설비의 시공현장에서 체크밸브의 방향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체크밸브는 기동용 가스를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고 반대로는 흐르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 밸브가 반대방향으로 시공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러한 체크밸브 표면에는 유체 흐름의 방향을 화살표 또는 작은 점으로 표시하고 있다. 때문에 시공 과정이나 감리, 점검과정 등에서 정상 방향을 확인하고 동작테스트를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동용기의 누설 확인 = 이산화탄소가 담긴 기동용기는 선택밸브와 소화약제 저장용기의 밸브를 개방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기동용기는 주기적인 누설 여부 확인을 통해 최상의 상태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국내 가스소화설비의 기동용기는 별도의 압력게이지가 없는 등 관리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때문에 시공 당시 납품되는 기동용기의 총 무게를 기록하고 관리 과정에서 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다. 방호구역 점검 = 가스소화설비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방안 중 하나는 방호구역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이다. 일단 적정한 설계를 통해 시공된 소화설비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방호구역 자체가 최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방호구역의 체적 등 변화 여부를 확인하는 주기적인 점검으로 소화농도 유지 가능성을 판단하고 변화조건이 발견되는 즉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은 바로잡아야 한다. 또최초 설계 및 시공 당시와 다르게 소화가스가 새롭게 누설되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 가스량을 늘리거나 가스 누설 우려 공간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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