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산불 대응력 높이려면… 현장에 집중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라!

Dr.risk 2022. 2. 22. 10:41

순천산불 20시간 만에 진화… 산림 10㏊ 소실

산불 현장에는 소방헬기 10대, 드론 4대, 특수진화대와 공무원 등 800여 명이 투입됐다. 영하 10도 안팎을 기록한 추운 날씨에 강한 바람까지 부는 상태에서 투입된 진화대원 등은 밤샘 작업을 벌였다. 특히 진화용 드론이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효과를 발휘하며 화재 진화에 큰 보탬이 됐다.

 

지난해(2021년) 성탄절에 발생한 전남 순천산불 상황에 대한 보도자료다. 

 

▲ [그림 1] 순천 산불 현장에서 드론을 이용한 산불 진화 홍보. 목격한 사람이 없는 데다가 강풍에 수관층이 두껍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드론으로 산불을 진화할 상황이 아니었다(산림청 자료).

 

멋모르는 대중이 기사를 보면 순천산불 진화에 있어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기사는 필자가 제기한 우리나라 산불관리의 문제점을 증명해주는 거나 다름없다.

 

산불전문가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순천산불은 전술도, 전략도 없이 완패한 국지전이었다. 당시 상황은 한겨울 찬 기온과 지표화 산불에 막대한 진화자원을 투입하고도 20시간 이상 지속됐다. 게다가 겨울 산불로는 믿기 힘든 10㏊의 산림이 소실됐다.

 

산불 상황을 분석해 보면 2021년 성탄절 오후 3시께 전남 순천시 서면 판교리에 있는 용계산 서쪽사면 3부 능선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산림청 산불위험예보에 따르면 산불위험지수(최고위험수치 100)는 19였고 실효습도 54%, 영하 10℃ 내외로 대형산불위험도는 낮았다.

 

단 오후 3시께 고룡사 입구로 불어닥친 편서풍이 골을 타고 강하게 북동쪽 능선으로 이동하는 상태였다. 임상은 5부 능선 이하는 수고 15m 이상 소나무 숲, 5부 능선 이상은 참나무에 관목이 적어 수관화 위험이 보통이었다. 산불 현장 우측 변으로 5t 이내 소방차 출입 가능한 임도가 조성돼 있어 진화 차량 접근에도 무리가 없었다.

 

▲ [그림 2] (위쪽부터)지표화 산불로 피해목이 구분 안 됨(드론 촬영), 산불 현장 접근이 쉬운 임도


단 40℃ 내외 급경사지에 강풍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불이 정상 부근까지 확산하긴 했지만 추운 날씨 탓에 봄 산불처럼 비화하진 않았다.

 

투입된 지 1시간여 만에 일몰로 헬기가 철수하고 산불은 지표화 상태로 후진 또는 측면 이동 중이라 확산 속도는 늦었다. 추운 날씨 탓에 야간 진화작업은 오후 9시께 종료됐다. 다음날 새벽에 헬기가 투입되면서 본격적인 진화작업이 시작됐다.

▲ [그림 3] 순천시 산불진화대 주불 진화광경. 진화차 3대 결빙돼 2대로만 살수 작업을 했다.


기사 내용과 달리 진화과정에서 험준하고 난해한 산불 상황을 대비해 만들었던 특수진화대의 활약은 미미했다. 드론 진화는 불가능했다.

 

일부를 제외하곤 오로지 헬기에 의존하는 기존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번 순천산불은 최첨단의 대대적인 진화자원을 투입하고도 12월 산불 중 영동지역을 제외한 역대 최대의 피해 면적을 기록한 모순과 치부를 드러내고 말았다.

▲ [표 1] 최근 19년간(2003~2021년) 12월 산불피해 면적 5순위

 

이처럼 우리나라 산불관리ㆍ보도자료를 보면 과정과 결과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잘했다고 발표되는 자료 대부분이 심각한 확증 편향적 오류를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이런 확증 편향에 사로잡힐 때 발전이 없고 오로지 전횡과 주장만 난무한다는 데 있다. 특히 재난 분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확산위험이 낮은 겨울 산불에서 이런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는 거다. 만약 이번 순천산불이 봄 산불이었다면 어땠을까? 2020년 안동산불처럼 호남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산불이 됐을 거다.

 

우리나라 산불관리ㆍ대응체계는 주무 부처 홍보내용과 현장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약 10여 년간 현장을 누비고 다닌 경험에 의하면 보도 내용은 딴 나라 내용으로 들릴 정도다.

 

이제 더는 이런 문제점을 안고 못 본채, 못 들은 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언제든 전쟁 같은 산불이 닥칠 수 있으므로 현실을 직시하고 이해와 인식을 넓혀가야 한다.

 

사기(肆氣)로 사기(士氣)를 꺾지 마라

산불 현장엔 가장 먼저 도착해 고생한 소방관도, 지자체 산불진화대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고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산불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대부분 이런 식이다. 

 

10년 이상 지자체에서 산불진화대를 하는 지인의 푸념이 귓전을 때린다. 

 

“요즘 산불 현장에 가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합니다. 산림청 특수진화대가 생기기 전만 해도 나름 열정을 갖고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죽어라 고생하고 나면 막바지에 ‘짠’하고 나타나 공을 가로채고 우린 뒤치다꺼리만 합니다. 열심히 한다고 알아봐 주는 사람도, 보장도 없어요” 

 

이미 어느 현장이든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이다.

 

참 답답한 사람들이다. 산불지상진화인력은 재정 일자리 사업이다. 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한 계층을 우선으로 선발한다. 미달 시 일반인을 보충하기도 하지만 이분들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의기소침해 있다.

 

그런 분들의 사기(士氣)까지 사기(肆氣)로 빼앗아선 안 된다. 산불방지인력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이상 그분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 숙련된 기술과 정착민의 장점을 현장에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뒷받침해야 한다. 의용소방대원도 마찬가지다. 

 

‘인간적으로 무시하는 생각부터 버려라! 배려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사기를 진작시켜라’

 

실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ㆍ훈련을 하라

산불진화는 쉬운 듯 난해한 기술이다. 언뜻 보기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명하고 싶다면 등짐펌프에 물을 담아 직접 진화작업에 참여해봐라. 보기와 전혀 다르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성과도 없고 꺼진 듯 보이지만 다시 살아나기 일쑤다. 

 

경력자도 막상 대형 산불 현장에 맞닥뜨리면 어디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시설물 화재의 경우 웬만하면 시야에 들어온다. 산불은 어느새 시야에서 벗어나 확산 면적의 가늠조차 힘들다. 도대체 이 불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건 실전적인 교육ㆍ훈련으로 충분히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불교육 과정은 연례행사처럼 지역유지나 높은 공직자의 용돈 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재미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형식에서 벗어난 실전적인 교육ㆍ훈련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산불 예방ㆍ진화방법을 익히고 동료와 의용소방대에 전수해 산불 현장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하라’

 

산(山)불보다 산(散)불이 더 문제다

세계적으로 산(山)불보다 산(散)불로 인한 불티가 도시를 잿더미로 만드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수목이 고령화될수록 마른 가지와 수피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는 불이 옮겨붙으면 쉽게 바람에 날아가고 특히 산불 위험시기엔 대기가 건조해 어디든 날아가 옮겨붙을 수 있다. 

 

▲ [그림 4] 수목 고령화로 마른 연료량 증가, 산불 발생 시 불티에 의한 재산피해 급증하는 추세(2019년 4월 4일 속초 산불피해지 항공사진)


산불진화대는 산불(山火), 소방관은 산불(散火)에 집중하라!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현행 산불은 산림청 소관이다. 소방은 산불 발생 때 시설물과 인명 보호가 주 임무다. 산불 진화 과정이 답답하다고 해서 임무를 벗어나 산불에 개입하다 바람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진 불씨로 시설물 피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별일이 없어 산불 진화에 동원됐을 뿐이라는 핑계는 잊어라. 오로지 산불이 언제든 사방으로 흩어져 민가로, 마을로, 도시로 날아들어 인명과 재산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 [그림 5] 시설물 보호 중인 소방 호스를 산불 진화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산불전문진화대원들

 

어떤 일이 있어도 소방은 인명과 시설물 보호가 우선이다 

2020년 안동산불 현장에서 겪은 일이다. 밤새 민가로 번지는 산불을 대비해 소방 호스를 펼쳐놓고 대기 중인 소방관에게 왜 산으로 올라가 불을 끄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걸 목격했다. 다그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산불전문진화대였다.

 

또 다른 곳에서는 주민의 재촉에 못 이겨 보호 중인 민가의 소방차를 산으로 이동해 산불진화에 나섰다가 산불이 휘돌아 민가를 전소시키는 현장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이화구화(以火救火), 소탐대실(小貪大失)한 거다. 

 

소방관은 산불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산불에선 연료를 태워 진화선을 구축하는 맞불이라는 진화 전술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에선 건강한 숲을 위해 정기적으로 산을 태우기도 한다.

 

단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면적이 좁아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 뿐이다. 이는 산이 인명과 재산 보호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걸 설명하기 위함이다. 단 시설물 보호는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기에 기다림도 과정으로 이해하고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산림화재 통계ㆍ데이터 관리체계를 구축하라

이전 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산불 관련 통계는 심각하게 왜곡돼 있어 올바른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산불 발생 통계와 피해조사 결과 데이터만 잘 구축ㆍ관리해도 산불대응력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와 발전을 꾀할 수 있다.

 

선행과제로 산불 발생ㆍ피해조사보고서 내용과 양식부터 바꿔라. 추후 축적된 자료를 통해 큰 노력 없이도 산불 위험지 관리ㆍ확산예측이 가능하다. 방법에 따라 혁신적인 국가 통계ㆍ데이터 관리 활용 모범사례가 될 수도 있다.

 

2021년 12월호를 시작으로 벌써 3회에 걸쳐 <119플러스>를 통해 산불을 얘기하고 있다. 특히 2022년 1월호의 경우 다소 부담스러운 내용도 있다. 하지만 민간연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직언이다. 누가 들어도 듣기 좋도록 좋은 게 좋은 거로 포장할 수도 있다.

 

솔직히 속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산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타협을 거부했다. 남은 2회는 산불 최고 위험시기에 원고가 작성된다. 이 과정에선 현장 깊숙이 들어가 있는 그대로를 전할 계획이다. 많이 외롭고 힘든 길이다. 부디 도움이 됐으면 한다.

 

 


 

황정석 소장은 

1967년 소백산자락 과수원집 큰아들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에서 산림정책을 전공하면서 산불정책과 교육 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 

   

7년 가까이 관계 기관 전임강사로 활동하다가 폭넓고 자유로운 산불연구를 위해 산불정책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003년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로부터 산림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됐으며 2019년에는 ‘우리나라 산불이야기’를 출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우수과학도서로 인증받은 바 있다. 

   

현재 중앙소방학교 외 5개 기관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인니ㆍ몽골 산불인프라 구축 관련 ODA 사업 연구기획과 산불정책 관련 언론 기고, 산불대응전략ㆍ교육훈련 관련 교재를 집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