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으뜸 여행 주제는 '백제 역사탐방'이다. 백제 왕도였던 부여와 공주에서 내달 18일부터 한 달간 '2010 세계대백제전'이 열린다.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이 땅에 자리했던 고대국가 백제 문화의 정수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수상공연.'사마(무령왕)이야기'가 공주 고마나루 무대에 올려진다. 무령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해상 강국을 이룬 이야기를 웅혼한 필치로 그린다. 부여 백마강 낙화암 수상 무대를 수놓을 '사비미르'는 의자왕과 3000궁녀 이야기에 얽힌 패망의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여준다.
◆1400년 전 백제 체험
백제시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웅진성의 하루''사비성의 하루' 등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소실된 백제 유물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백제 유물 · 유적 복원전'도 마련된다. 123마리의 말과 100명의 병사가 백제인의 기상을 표현하는 '대백제 기마군단 행렬',5000명의 백제군이 5만명의 신라군과 대결했던 '황산벌 전투 재현'도 기대된다.
부여 '백제문화재현단지'가 눈길을 끈다. 백제 왕궁인 사비궁,백제의 대표적 사찰인 능사와 생활마을을 전통양식으로 재현해 놓은 역사테마파크다. 대목장,단청장,연화장,각자장,칠장 등 5명의 중요 무형문화재가 17년간의 공사 끝에 복원 수준으로 재현됐다.
'천정전'을 중심으로 '문사전''무덕전'을 회랑으로 감싼 사비성은 웅장하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직선으로 내려오다 살짝 들어올려진 처마선이 좀 짧은 듯하지만 단정한 느낌을 준다. 용마루 끝에 올려진 치미 장식도 건물 크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청도 차분하다. 명도와 채도를 일부러 낮췄다고 한다. 충남백제문화관리사업소의 이강복씨는 "능산리고분군 등의 벽화는 오래돼서 빛이 바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색을 써서 바랜 것처럼 보인다"며 "명도나 채도가 낮은 광물안료를 썼던 당시의 단청색을 최대한 살렸다"고 설명했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 상부에 45도 각도 아래로 튀어나온 '하앙'도 백제 건축양식의 특징 중 하나. 천정전에 이르는 어도는 부여에서 출토된 용무늬 벽돌을 만들어 깔았다.
능사 5층목탑의 모습이 당당하다. 능사는 백제문화재현단지에서 8㎞ 떨어진 곳에 있는 절터.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창명왕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된 곳이다. 발견된 초석을 기초로 재현한 5층 목탑의 높이는 38m로 중층 아파트 높이와 비슷하다.
◆국내 최초의 인공연못'궁남지'
백제문화재현단지에서 백마강 낙화암이 가깝다. 낙화암은 700여년 역사의 백제 왕조가 무너지던 날 의자왕의 궁녀들이 강물에 몸을 던져 절의를 지켰다는 곳이다. 송시열이 쓴 것으로 전하는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바위벼랑에 새겨져 있다. 낙화암 꼭대기의 백화정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왠지 쓸쓸하다. 부소산성,그것도 강물에 막혀 더 이상 갈 데 없는 낙화암 벼랑에 몰렸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부소산성 아래 사비성터로 추정되는 곳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궁남지 사이에 정림사지가 있다.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1탑 1금당' 양식의 가람이다. 고려시대(1028년) 기와에 새겨진 명문을 근거로 정림사지라 부른다. 절터 한가운데에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이 있다. 149개의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8.33m의 목탑형식 석탑이다. 장중하면서도 세련된 백제인의 솜씨를 볼 수 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무너뜨린 다음 탑의 1층 몸체돌 사방에 그 공적을 새겨넣는 바람에 소정방이 세운 것으로 오인받기도 했다. 5층석탑 뒤편 강당 자리에 정림사지석불(보물 108호)이 있다. 고려시대 불상이라고 한다.
정림사지에서 직선으로 더 내려가면 궁남지를 만난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으로,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한다. '백제 무왕 35년(634년)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란 삼국사기 기록에서 지금의 이름이 비롯됐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의 탄생설화와도 관계가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과 몸을 섞고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이라는 것.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고 한다. 홍련 · 백련이 가득하고 잔바람에도 흔들리는 수양버들이 드리우는 그늘이 시원하니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것 같은 분위기다.
웅진·사비성의 하루…치열한 황산벌 전투…백제, 연꽃으로 피다
부여로 떠나는 역사탐방
당당한 능사 5층목탑
정림사지 5층석탑
1400년 전 백제 미학 부활
| ||
올 가을 으뜸 여행 주제는 '백제 역사탐방'이다. 백제 왕도였던 부여와 공주에서 내달 18일부터 한 달간 '2010 세계대백제전'이 열린다.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이 땅에 자리했던 고대국가 백제 문화의 정수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수상공연.'사마(무령왕)이야기'가 공주 고마나루 무대에 올려진다. 무령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해상 강국을 이룬 이야기를 웅혼한 필치로 그린다. 부여 백마강 낙화암 수상 무대를 수놓을 '사비미르'는 의자왕과 3000궁녀 이야기에 얽힌 패망의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여준다.
◆1400년 전 백제 체험
백제시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웅진성의 하루''사비성의 하루' 등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소실된 백제 유물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백제 유물 · 유적 복원전'도 마련된다. 123마리의 말과 100명의 병사가 백제인의 기상을 표현하는 '대백제 기마군단 행렬',5000명의 백제군이 5만명의 신라군과 대결했던 '황산벌 전투 재현'도 기대된다.
부여 '백제문화재현단지'가 눈길을 끈다. 백제 왕궁인 사비궁,백제의 대표적 사찰인 능사와 생활마을을 전통양식으로 재현해 놓은 역사테마파크다. 대목장,단청장,연화장,각자장,칠장 등 5명의 중요 무형문화재가 17년간의 공사 끝에 복원 수준으로 재현됐다.
'천정전'을 중심으로 '문사전''무덕전'을 회랑으로 감싼 사비성은 웅장하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직선으로 내려오다 살짝 들어올려진 처마선이 좀 짧은 듯하지만 단정한 느낌을 준다. 용마루 끝에 올려진 치미 장식도 건물 크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청도 차분하다. 명도와 채도를 일부러 낮췄다고 한다. 충남백제문화관리사업소의 이강복씨는 "능산리고분군 등의 벽화는 오래돼서 빛이 바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색을 써서 바랜 것처럼 보인다"며 "명도나 채도가 낮은 광물안료를 썼던 당시의 단청색을 최대한 살렸다"고 설명했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 상부에 45도 각도 아래로 튀어나온 '하앙'도 백제 건축양식의 특징 중 하나. 천정전에 이르는 어도는 부여에서 출토된 용무늬 벽돌을 만들어 깔았다.
능사 5층목탑의 모습이 당당하다. 능사는 백제문화재현단지에서 8㎞ 떨어진 곳에 있는 절터.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창명왕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된 곳이다. 발견된 초석을 기초로 재현한 5층 목탑의 높이는 38m로 중층 아파트 높이와 비슷하다.
◆국내 최초의 인공연못'궁남지'
백제문화재현단지에서 백마강 낙화암이 가깝다. 낙화암은 700여년 역사의 백제 왕조가 무너지던 날 의자왕의 궁녀들이 강물에 몸을 던져 절의를 지켰다는 곳이다. 송시열이 쓴 것으로 전하는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바위벼랑에 새겨져 있다. 낙화암 꼭대기의 백화정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왠지 쓸쓸하다. 부소산성,그것도 강물에 막혀 더 이상 갈 데 없는 낙화암 벼랑에 몰렸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부소산성 아래 사비성터로 추정되는 곳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궁남지 사이에 정림사지가 있다.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1탑 1금당' 양식의 가람이다. 고려시대(1028년) 기와에 새겨진 명문을 근거로 정림사지라 부른다. 절터 한가운데에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이 있다. 149개의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8.33m의 목탑형식 석탑이다. 장중하면서도 세련된 백제인의 솜씨를 볼 수 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무너뜨린 다음 탑의 1층 몸체돌 사방에 그 공적을 새겨넣는 바람에 소정방이 세운 것으로 오인받기도 했다. 5층석탑 뒤편 강당 자리에 정림사지석불(보물 108호)이 있다. 고려시대 불상이라고 한다.
정림사지에서 직선으로 더 내려가면 궁남지를 만난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으로,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한다. '백제 무왕 35년(634년)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란 삼국사기 기록에서 지금의 이름이 비롯됐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의 탄생설화와도 관계가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과 몸을 섞고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이라는 것.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고 한다. 홍련 · 백련이 가득하고 잔바람에도 흔들리는 수양버들이 드리우는 그늘이 시원하니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것 같은 분위기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전에도 그런 명소가! (0) | 2011.04.16 |
---|---|
아름다운 풍경 (0) | 2010.12.15 |
대전에 명물 탄생(은행동 구.목척교) (0) | 2010.08.20 |
우리모두 공주에서 만나요! (0) | 2010.06.25 |
2010 대충청방문의 해 (0) | 2010.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