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감식평가

4년 만에 또다시 반복된 고시원 화재 참사… 문제는?

Dr.risk 2022. 4. 25. 21:21

영등포서 고시원 화재로 2명 숨져… “7명 숨진 종로 고시원 화재 겪고도 변한 건 없어”

소방시설 정삭작동 했다는 관할 소방서, 과연 제 성능은 발휘했나

소방법규 안 맞는 스프링클러… 성능 부실 소방시설 장기간 방치

10분 방수 성능 규정, 6분밖에 못 쏘는 잘못된 스프링클러 설치

3년 전 소방완비 고시원에 20년 묵은 화재감지기. 관리는 했나

성능 저하 우려되는 노후 화재감지기들 “내용연수 도입 시급”

부실한 소방 안전시설… 소방안전관리자 없고 점검도 ‘사각지대’

4년 전 7명 숨진 종로 고시원 때 문제 겪고도 법 안 고친 정부

고시원 안전법규 고치면 뭐하나… ‘공염불’ 그친 다중이용업소법

영업주 바뀌어도 강화 규제 법망 벗어나는 느슨한 규정이 문제

 

▲ 지난 11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영등포의 고시원 건물     ©소방방재신문

 

[FPN 최영 기자] = 지난 11일 오전 6시 33분께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굿모닝 고시원에서 불이나 2명이 숨졌다. 2018년 7명이 사망한 종로 고시원 화재 이후 4년 만에 또 고시원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이날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은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구조 활동을 벌였다. 6시 41분께 70대 남성을 구조한 뒤 6시 42분께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7시 13분 두 번째 희생자인 60대 남성을 구해냈다. 냈지만 두 명 모두 숨을 거뒀다. 이 이후에도 3시간이 넘는 진압 활동을 벌여 9시 37분이 돼서야 불길을 완전히 잡을 수 있었다.

 

화재로 숨진 70대 이모씨와 60대 김모씨 등 두 명은 전신 화상을 입은 채 고시원 복도와 휴게실에서 발견됐다. 이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 판정을 받았다. 화재 당시 대피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흡입한 뒤 화염에 노출되면서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은 불이 32개의 고시원 방 중 26호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1.5평 크기의 객실 32개가 밀집한 고시원에는 화재 당시 사망자를 포함해 모두 18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3층 주택에도 2명의 거주자가 있었지만 숨진 2명을 제외한 나머지 18명은 모두 자력 대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날 현장에는 소방인력 208명, 의용소방대 20, 경찰 34 등 약 270여 명과 67대의 장비가 동원됐다. 15개 대 진압대와 5개 대 구조대가 집중 투입돼 화재진압 활동을 벌이는 동시에 인명 검색에 주력했다. 경찰과 소방은 방화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불이 난 ‘굿모닝’ 고시원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연면적 812.89㎡ 규모로 1977년 지어진 건물에 들어서 있다. 191.04㎡ 크기의 2층 고시원은 32개의 객실과 3개의 화장실, 1개의 주방이 들어선 구조다.

 

▲ 11일 화재가 발생한 영등포 고시원 내 비좁은 통로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방들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최영 기자

 

오래전 지어진 건물이지만 주 출입구와 뒷 편엔 별도의 비상구가 옥외 계단으로 연결돼 있는 등 일반적인 노후 건물과 달리 양방향 피난로가 있어 피난 측면에선 비교적 안전한 구조였다. 

 

영등포소방서는 사고 당일 9시 40분께 가진 브리핑에서 불이 난 고시원에는 간이스프링클러와 경보시설 등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었고 화재 당시에도 정상 작동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사고가 난 고시원에 설치된 간이스프링클러는 엉터리 상태로 설치된 뒤 장기간 동안 방치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화재경보시설은 제 기능을 발휘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노후돼 있었다. 다중이용업소의 완비증명을 받은 고시원의 안전시설은 유지ㆍ관리조차 힘든 허술한 법망 속에 노출된 사실도 드러났다. 

  

고시원에 설치된 엉터리 간이스프링클러

영등포소방서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은 2011년 최초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을 받은 뒤 2019년 한 차례 업주가 바뀌면서 재완비 증명을 받았다.

 

업주변경 과정에서 해당 고시원은 기존에 설치돼 있던 간이스프링클러를 최근 법규에 맞춰 다시 설치했다. 과거 상수도 직결방식이었던 간이스프링클러설비를 이때 강화 법규에 따라 수원 1천ℓ를 자체 저장하는 일명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로 교체ㆍ시공했다.

 

간이스프링클러설비는 ‘캐비닛형’과 ‘상수도직결형’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상수도직결형’은 수조를 사용하지 않고 상수도에 직접 연결해 항상 기준 압력과 방수량을 확보하는 설비다. 

 

화재 발생 고시원에 설치돼 있던 ‘캐비닛형’은 물을 배관에 보내주는 가압송수장치(펌프)와 법규에서 정한 양의 물을 저장하는 수조, 스프링클러 헤드 개방 시 물의 흐름을 감지해 펌프를 동작시켜주는 유수검지장치 등이 하나로 결합된 패키지시스템이다.

 

▲ 불이 난 고시원에 설치돼 있는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     ©최영 기자

 

하지만 이 간이스프링클러설비가 엉터리로 시공된 사실이 취재결과 드러났다. 현행법상 간이스프링클러는 두 개의 스프링클러 헤드가 열릴 때 각각 분당 50ℓ의 물이 10분 동안 쏟아질 수 있도록 설치해야 한다.

 

두 개의 각 헤드를 합쳐 총 100ℓ가 10분 이상 뿌려지도록 소방관련법(화재안전기준)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반드시 성능인증을 받아야만 하는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에 1천ℓ 용량의 수조가 기본으로 구성되는 이유기도 하다.

 

특히 간이스프링클러설비에는 법규에 따라 반드시 분당 50ℓ를 뿌려줄 수 있는 ‘주거형(간이형) 스프링클러 헤드’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FPN/소방방재신문>이 불이 난 고시원의 스프링클러설비를 직접 확인한 결과 ‘간이형’이 아닌 ‘일반형’ 스프링클러 헤드가 설치돼 있었다. 법규에 어긋날 뿐 아니라 작동을 하더라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엉터리 설비였던 것.

 

분당 80ℓ를 뿌려주는 이 일반형 스프링클러 헤드는 두 개가 개방되면 분당 160ℓ의 물이 쏟아지게 된다. 1천ℓ 물이 저장된 수조는 법에서 정한 10분에 훨씬 못 미치는 6분 정도밖에 물을 뿌리지 못하는 셈이다. 만약 헤드 한 개만 개방됐을 땐 간이형 헤드의 경우 20분, 일반형 헤드는 12분가량밖에 방수하지 못한다.

 

▲ 불이 난 영등포 고시원에 설치돼 있는 스프링클러 헤드. 해당 제품의 인증 표시 번호를 추적해 한국소방산업기술원과 제품을 만든 제조업체에 확인한 결과 ‘일반형’헤드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영 기자

 

고시원에 적용된 일반형 스프링클러 헤드는 2011년 제조된 제품이었다. 2011년 최초 완비증명 이후 2019년 다시 완비를 받는 과정에서 강화 법규에 따라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로 교체하면서도 배관과 스프링클러 헤드 등의 구성품은 바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년 전 소방완비 시설에 20년 묵은 화재감지기가…

화재 당시 고시원 내에 설치된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보이는 정황도 확인됐다. 이 고시원은 3년 전 소방허가를 받았지만 화재경보시설은 20년이나 된 노후 시설이었다.

 

▲ 고시원에 설치돼 있는 화재수신기     ©최영 기자

 

2011년 한 차례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을 받은 고시원은 2019년 4월 15일 업주변경 과정에서 다시 완비를 받았다. 2층 고시원에만 소방시설이 집중적으로 갖춰진 배경이다. 

 

소방에 따르면 화재 당시 고시원에 설치된 소방시설은 수동식소화기 36개, 간이소화용구(자동확산소화용구) 1개, 간이스프링클러설비, 자동화재탐지설비(수신기 1개, 감지기 38개), 가스누설경보기 1개, 유도등 6개, 유도표지 34개 등이다.

 

하지만 최초 설치 이후 성능 유지를 위한 소방시설 관리는 부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소방시설을 직접 확인해 보니 대부분이 심각하게 노후된 상태였다.

 

특히 화재 초기 경보를 울려 피난 시간을 확보해주는 필수 시설인 화재 경보설비(자동화재탐지설비)는 무려 20년 전 제조된 제품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화재감지기로부터 신호를 받아 경보 신호를 내보내는 화재감지시스템의 두뇌격인 ‘수신기’와 화재감지기는 모두 2002년 5월 생산품이었다. 최초 2011년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 이후 불과 3년 전 업주변경 시 관할 소방서로부터 완비증명을 또 받았지만 소방시설은 오랜 기간 단 한 번의 교체 없이 운영해 왔음을 방증한다.

 

▲ 화재 수신기와 화재감지기의 제조일을 확인해보니 모두 20년 전에 생산된 제품들이었다.     ©최영 기자

 

이 같은 노후 화재감지기가 제 기능을 발휘했을 거란 기대는 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소방청이 주최한 제33회 119소방정책 컨퍼런스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경기도 시흥소방서의 연구자료에선 노후 소방시설의 문제성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 연구에선 사고가 난 고시원에 설치된 감지기와 동일한 유형의 감지기(차동식 스포트형 열감지기)를 1년, 3년, 5년, 10년, 15년, 20년 등 제조 시기별로 수거해 시험한 결과 노후 기간별로 감지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5년, 10년 된 감지기 중에서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 감지기도 다수 있었다.

 

특히 일반인의 보행속도(1㎧)를 기준으로 설치 후 20년이 경과한 감지기는 약 3년 된 감지기(9.86m)와 비교할 때 4.33m(14.19m)의 피난 시 손해 거리를 발생시킬 만큼 감지시간이 둔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쉽게 말해 오래된 감지기일수록 감도가 둔해져 적기 피난을 알려주기 힘들다는 결론이다.

 

지난 2015년에는 한국소비자원이 노후 아파트에 설치된 감지기 151대를 수거해 정상 작동 여부를 시험한 결과 22대에 달하는 감지기가 정상 성능조건(소방청 형식승인 기준)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미작동 화재감지기 22대 중 63.6%에 달하는 14대가 20년 이상된 제품이었고 27.3%를 차지하는 6대의 감지기는 15년 이상 20년 미만 제품이었다.

 

▲ 불이 난 영등포 고시원에 설치된 화재감지기     ©최영 기자

 

두 명이 숨진 영등포 고시원 화재 당시 소방시설이 작동은 했더라도 정상 감도 등 적정시간에 작동해 제 기능을 발휘했을 가능성만큼은 보장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소방청이 수립한 ‘비화재경보 종합대책’ 자료에 따르면 가까운 일본에서는 이 같은 감지기의 내용연수를 연기감지기는 10년, 열감지기는 15년(반도체식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반 국민은 물론 소방 관련 기술자조차 감지기 교체 주기를 가늠하거나 준용할 수 있는 내용연수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소방청은 화재감지기 노후화에 따른 신뢰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화재감지기에 대한 내용연수 기준을 정립하겠다고 밝힌 상태지만 아직 뚜렷한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노후 소방시설 연구를 진행한 시흥소방서 연구자료에선 “피난 취약성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도가 좋은 화재감지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경년변화에 따른 감지기의 유지ㆍ관리 시점을 수립해야 하고 감지기의 교체 연수 기준도 반드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실 관리 의심되는 안전시설들… “이유 있었다”

화재로 두 명이 숨진 영등포 고시원에 엉터리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되고 노후 소방시설이 장기 방치된 이유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소방시설이 설치된 건물은 소방관련법에 따라 ‘특정소방대상물’로 분류되고 소방안전관리자를 배치해야 한다. 또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의무적으로 실시해 관할 소방서에 보고하고 문제가 있을 땐 시설 보완을 해야 한다. 이는 건축물의 화재 안전성 확보를 위한 소방관련법의 기본 흐름이다.

 

하지만 해당 고시원은 1977년 인허가 당시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소방안전관리자도, 소방시설을 점검해야 하는 대상물에서도 빠져 있었다. 

 

2011년 최초 소방서로부터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고시원의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을 받으면서 안전시설을 갖췄지만 시설 점검과 관리는 업주에게만 맡겨진 ‘셀프 점검’이 다였다. 

 

영등포소방서에 따르면 해당 고시원은 지난 2019년 2월 11일 한 차례 화재안전특별조사를 받았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이후 전국적으로 진행된 실태조사다. 

 

이때 고시원에 설치된 소화기가 법적 내용연수 기준인 10년을 초과한 문제가 지적됐다. 사실상 화재에 취약한 고위험 시설인 ‘고시원’이었지만 소방관서의 관리와 감독을 받은 건 이때가 전부다.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을 받으며 각종 안전시설을 설치하고도 최초 시설 설치 당시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는지, 기능적 문제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시설점검에 대한 관리ㆍ감독은 사실상 부재했던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2018년 7명이 숨진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 때에도 동일한 문제가 드러났었다는 점이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바뀐 게 없다. 당시에도 불이 난 고시원에는 자동화재탐지설비 등 각종 안전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불량 상태로 방치돼 화재 당시 제 역할을 못 했다.

 

▲ 2017년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종로 고시원 건물은 당시 소방관련법에 따라서는 특정소방대상물로 분류되는 규모였지만 1983년 지어진 탓에 당시 소방법에 따른 규제를 대부분 받지 않았다.      ©최영 기자

 

2007년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을 받은 뒤 종로 고시원의 안전시설 중 화재경보설비는 고장 난 채 장기간 방치되면서 화재 당시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종로 고시원이 들어선 건물은 1982년 지어져 특정소방대상물로 분류되지도, 소방안전관리자가 배치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시설 관리ㆍ감독의 사각지대라는 점에서 이번 영등포 고시원과 판박이다. 

 

현행법에서는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을 받은 곳은 안전시설의 점검 의무를 업주에게 부여하고 있다. 분기별로 실시해야 하는 이 점검 결과는 1년간 자체 보관할 뿐 소방서에 보고하지 않는다. 

 

건축 허가 때부터 소방시설이 설치된 건물은 1년에 1회 이상 전문업자 등을 통해 자체점검을 실시하고 소방서에 보고되는 체계가 적용된다. 하지만 두 고시원의 경우 소방관서에서 현장에 나가 확인하지 않는 이상 소방시설의 적정 관리 상태를 알 길이 없다.

 

20년이 넘은 노후 안전시설과 간이스프링클러 헤드가 법규에 맞지 않게 엉터리로 설치된 채 방치되는 등 부실 시설이 제대로 관리될 수 없는 현실이 관련 제도에서 시작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오래전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지어진 건물 중 고시원과 같은 ‘다중이용업소’가 뒤늦게 들어와 소방 완비증명을 받은 현황은 별도로 집계조차 안 돼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현황을 파악하려면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 대상물 등 보유 정보를 확인해 별도로 집계해야 한다”며 “현재 따로 통계가 나와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특성을 가진 다중이용업소가 완비증명을 받을 당시 안전시설을 유지ㆍ관리할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고시원 등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사고로 인명피해가 이어지면서 정부에서는 간이스프링클러 등 각종 안전시설 설치를 강화해 왔다”며 “앞으로는 안전시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점검 결과를 소방관서에 제출토록 하는 등 강화 규제의 온전한 이행을 위한 사후 관리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사고 겪고 규제 강화하고도… ‘공염불’된 다중이용업소법

▲ 화재가 발생한 서울 영등포의 고시원 복도 

 

불이 난 영등포 고시원은 2019년 업주가 변경되면서 다중이용업소 안전시설에 대한 완비증명을 받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대형 사고를 겪으며 보완해 온 소방법규는 대부분 적용되지 않았다. 

 

고시원은 그동안 대형화재 사고를 겪으며 간이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시설, 피난시설 등 다양한 규제 강화가 이뤄졌다. 이 중 연기를 감지하는 방식의 화재감지기 설치 의무화가 대표적인 개선책이다.

 

정부는 지난 2015년 1월 23일 고시원에 연기감지기를 설치하도록 법규를 고쳤다. 연기감지기보다 최대 8분가량 늦게 화재를 감지하는 열감지기가 잠을 자는 고시원 등 숙박 형태 시설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불이 난 영등포 고시원의 32개 객실에는 모두 ‘열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화재경보시설이 정상작동했더라도 현행 법규에서 요구하는 연기감지기보단 감지 속도가 느려 거주자들의 피난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행법으로 따질 때 구획된 실마다 설치해야 하는 비상벨도 없었다. 해당 고시원에는 한 평 남짓한 방이 32개나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화재 시 경보음을 발생시켜주는 비상벨은 방마다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역시 2013년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할 경우 지구음향장치를 구획된 실 마다 설치하도록 한 규정이 반영되지 않은 탓이다.

 

고시원에 설치된 비상벨은 입구 우측 화재 수신기 위의 달랑 한 개가 전부였다. 2019년 교체한 간이스프링클러설비와 연동된 싸이렌이 있긴 했지만 이 역시 수신기 앞쪽에 위치해 전체적인 경보를 울리지 못하는 구조였다.

 

▲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 평면도, 비상벨의 위치는 입구쪽 하나가 전부였다. 두 명의 사망자는 모두 피난구 인근과 급접한 곳에서 쓰러진채 발견됐다.   © 최영 기자


결국 경보를 울려주는 비상벨은 입구 쪽에서만 울려 고시원 내부의 각 방에 있던 거주자가 화재 사실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비상벨로 설치된 경종은 90dB 이상의 성능을 갖지만 격벽이 많고 거리가 멀 경우에는 경보 음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기 때문이다.

 

▲ 고시원에 유일하게 설치돼 있던 비상벨  © 최영 기자

20년 전 제품이 설치된 화재 수신기도 문제다. 관할 소방서인 영등포소방서는 화재 직후 화재경보시설이 정상 작동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영등포소방서 측은 “화재 당시 출동한 대원들이 화재 경보설비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었고 아마 촬영된 영상에도 녹화가 됐을 것”이라며 “대피자들도 경보 소리를 들었다고 했었다”며 이를 정상작동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사 중인 사고라 근거 영상은 제공해주기 힘들다”고 했다.

 

고시원에 설치된 화재수신기는 2002년 생산된 제품이다. 지난 2016년 1월 소방청은 화재 발생 시 경보시설의 정상 작동 여부 등을 알 수 있는 ‘기록장치’를 탑재하도록 화재수신기의 기준을 강화했다. 이듬해부터 생산된 수신기의 경우 화재경보시설의 작동 이력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차량 사고 시 블랙박스로 사고 책임을 규명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역으로 말하면 오래 전 제조된 해당 고시원의 수신기는 특성상 화재경보시설의 작동 여부를 확인조차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했다면 과연 화재 초기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얘기다. 

 

또 내부 복도 폭 규정과 원활한 피난을 위해 복도에 의무 설치해야 하는 피난 유도선 등 대다수 안전시설 규정이 최초 완비증명을 받은 2011년부터 2019년 업주가 변경되는 사이에 바뀌었지만 영등포 고시원에는 모두 적용되지 않았다.

 

정부가 수많은 화재 사고 이후 고심하며 내놓은 법규 개선책을 통해 다중이용시설의 안전성이 강화되고 소방시설도 과학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관련 개선 정책이 실상에선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고시원 같은 다중이용업소에서 개선 법규가 적용되지 못하는 배경은 느슨한 ‘다중이용업소법’이 원인으로 꼽힌다. 다중이용업주 변경 시 안전시설을 그 시점의 법규로 준수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선 업주가 바뀌더라도 영업장 내부구조의 면적이나 구획실의 증가 또는 내부통로 구조 변경 등이 없다면 소방관서에 안전시설 등을 다시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재발급 개념으로 봐 기존 설치해 놓은 안전시설에 대한 점검만 이뤄진다.

 

고시원 같은 고위험군 다중이용업소마저 업주가 수십 번 바뀔지언정 내부구조나 시설 변경이 없다면 그사이 개선된 법규가 있었더라도 소용이 없는 셈이다. 

 

기존 영업 중인 시설까지 강화 법규를 소급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영업주 변경 때에는 안전시설의 최신 법규 준용 여부를 검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한 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은 “다중이용시설에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근본 이유는 시설 운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업주보단 불특정다수의 이용자인 국민을 위한 목적이 더 크다”며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일률적인 소급적용은 어렵겠지만 최소한 업주변경 시점에서의 개선 법규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