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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주거지 소방대책 있나

Dr.risk 2010. 10. 8. 22:16

고층 주거지 소방대책 있나 <상> 화재 취약성과 부실한 진화장비
빌딩숲 '먼로바람' 단숨에 불 확산… 15층 이상은 속수무책

- 고층 상승기류·굴뚝효과로 '치솟는 불길' 대형참사 우려
- 건물 폐쇄적 구조 탓 입주민 상황 판단 어렵고 초기진화 실패땐 구조 어려워
-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불붙은 잔해로 2차 피해도
- 고가사다리차는 무용지물, 제대로 된 진화대책 없어

지난 1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구 우1동 마린시티 내 주거형 오피스텔 '우신골든스위트' 대형 화재를 통해 고층건물에 대한 화재 위험성과 소방당국의 화재 진압 능력이 다시 한 번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특히 '부산의 맨해튼'이라는 별칭 속에 부산지역 최고급 주거지로 꼽히는 마린시티는 건물 자체 높이는 물론 전체가 빌딩숲을 이루는 구조면에서 볼 때 대형화재가 발생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고층 주거지의 화재에 대한 취약성과 대책을 두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먼로바람', '굴뚝효과'…대형 화재 발생 가능성 상존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쪽에서 바라본 마린시티 일대가 고층건물로 숲을 이루고 있다. 맨오른쪽 황금색 건물이 지난 1일 불이 난 주거용 오피스텔인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당시 반대쪽이 집중적으로 불에 타 사진에 보이는 쪽은 비교적 멀쩡하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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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건물은 '굴뚝 효과'와 '먼로바람' 등으로 인해 구조적, 외부적으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굴뚝효과란 건물 안팎의 압력 차로 불이 났을 때 뜨거운 공기가 빠르게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불길이 쉽게 번지는 현상이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소용돌이처럼 솟구치는 '먼로바람'은 상공에서 부는 바람이 고층건물에 부딪혀 곧장 지상으로 내려오고 다시 강하게 상승하는 현상으로 특히 빌딩과 빌딩 사이의 이른바 '빌딩숲'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마린시티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상승기류까지 만들어낸다. 태풍이 국내에 상륙할 경우 보행조차 힘들 정도의 강풍이 불어닥치곤 한다. 이번에 4층에서 발생한 불을 38층으로 단숨에 확산시킨 원인도 바로 굴뚝효과와 먼로바람에 의한 기류였다. 부산지역 31층 이상 고층 건물 185개 시설이 대형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대피 공간, 시간적 여유 없어…진화장비는 '꼬마' 수준

초고층 건물 입주자는 화재 발생 때 건물 밖으로 대피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 단전 조치로 승강기 이용이 전면 통제되는 데다 승강기 이동로가 불길과 화기(火氣)의 통로가 될 수 있어 위험천만하다. 이 때문에 스프링클러 등을 이용한 초기진화에 실패할 경우 구조작업 자체가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실제 이번 화재 때도 소방관들이 38층까지 걸어올라가 한 층씩 구조작업을 벌이거나 진화에 나서야만 했다. 이번 화재 진압 과정에서도 드러났듯 고가사다리차는 15층 이상 고층 건물의 화재 진화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주거시설 층수를 소방장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주상복합시설 및 주거용 오피스텔 건물은 화재 확산을 막아주는 기능을 하는 발코니를 용도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단지 내 조경과 구조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고가사다리차와 안전매트 등을 배치할 공간도 없고, 좌우 개폐식 창문이 아니라 좁은 틈으로 문을 겨우 여는 앞뒤 개폐식 창문이 대부분이어서 구조작업에 상당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초고층 건물에서는 '피난 안전층' 등 긴급 대피장소를 건물 내 마련해 화재 발생 때 층수별 대피공간을 숙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빌딩숲…인근 건물도 위험

 
고층·초고층 건물의 경우 화재발생 때 직접적으로 불이 이웃건물로 번지거나 알루미늄패널 등 외부구조물이 떨어져 2차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 마린시티처럼 고층건물이 숲을 이루고 있을 때는 그 위험이 더욱 커진다. 골든스위트 화재 당시에도 화재 잔해가 바람을 타고 50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 인접한 건물 및 상가 입주자들이 대피했다. 마린시티 내에는 현재 가장 높은 포스코 아델리스(47층)와 두산위브포세이돈(45층) 건물에다 이번 화재발생 장소에서 불과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국내에서 가장 높은 규모인 80층짜리(지상 300여 m)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와 72층짜리 '해운대 아이파크' 등 초대형 고층건물이 내년 말께 입주를 목표로 건립 중이다. 또 해운대구 센텀시티 내 주상복합건축물인 더샵센텀스타(60개 층씩 3개 동)와 동래구 온천동 SK허브스카이(49층씩 2개 동) 등 시내 곳곳에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옆집에 사람 사는지 모른다"

초호화 폐쇄구조를 지닌 초고층 건물의 입주민들은 이웃 간 소통이나 교류가 일반 아파트나 단독주택에 비해 원활하지 않다. 가뜩이나 아파트가 주거문화 형태로 완전 자리잡으면서 "옆집이 빈집인지 사람 사는 집인지 알고 싶지 않다"는 폐쇄성이 초고층 건물 입주자들에는 더욱 두드러진다. 마린시티의 경우 주민들이 외부 노출을 꺼리는 탓인지 구청에서 임명하는 통장을 맡으려는 주민들이 없을 정도다. 이번 화재 발생 이후 1시간여 만에 구조됐다는 한 입주자는 "소방차 수십 대의 사이렌 소리를 듣기 전에는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고 전했다. 이처럼 최고급 건물은 소음이나 냄새도 잘 차단돼 있어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이나 전화 등 외부 알림이 없으면 머리 위, 발 아래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 부산지역 모 초고층 건물의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들 간 인사도 나누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며 "평소 이웃과의 소통부재가 긴급상황 발생 시 치명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화들짝 놀란 시공사들 "우리는 안전"

- "첨단 방화시스템과 대피공간… 실전같은 소방훈련도 벌여"
- 긴급 보도자료 뿌리며 홍보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의 '우신골든스위트' 화재에 놀란 초고층 건물 시공사들이 "우리는 안전하다"며 사활을 건 홍보전에 나섰다. 초고층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분양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서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 벽산아스타(48~52층 3개동)를 시공한 벽산건설은 3일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가구에 스프링클러와 화재감지기가 24시간 작동한다. 소방 전용 저수조를 통해 소화수도 충분히 확보된 상태"라면서 "특히 컴퓨터 통합 방화시스템을 통해 불이 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초동 진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에 연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전실제연시스템이 설치돼 있고 동래소방서와 화재 대피훈련을 자주 한다는 것이 벽산건설의 설명이다.

마린시티에 최고 80층의 '두산위브더제니스'를 시행한 대원플러스건설은 고열에 견딜 수 있는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해 화재가 나도 건물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기술인 '폭열방지시스템'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시공사인 두산건설은 국토해양부의 '건설 신기술' 인증을 받은 폭열방지시스템을 최고 높이 300m인 두산위브더제니스에 국내 처음으로 적용했다. 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건물 중량을 줄이고 유효 면적을 넓히기 위해 고강도 콘크리트 사용이 일반화돼 있지만 고열로 인한 폭발을 유발할 수 있어 정부와 건설사들의 최대 현안이었다. 대원플러스건설 탁종영 이사는 "미국의 건축기준(IBC)을 적용해 폭열방지뿐 아니라 모든 동에 2개 층의 피난층과 3개 층마다 3층 높이의 피난공간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우신골든스위트가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내년 6월 입주하는 부산진구 서면 센트럴스타(47~58층 5개 동)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지하주차장과 쓰레기 처리공간에 스프링클러 설치 ▷외벽 유리와 판넬에 가연재가 아닌 수용성 페인트 사용 ▷피난구를 통해 이웃집으로 이동 가능 ▷동별 스카이라운지에 피난덱과 피난계단 마련 ▷소방관 진입용 비상 엘리베이터 가동을 대표적 화재 대응 시스템으로 꼽았다. 포스코건설 측은 "해운대 주거용 오피스텔 화재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초고층 화재 발생에 대비한 재난 대책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건설사 모두 초고층 건물의 안전성과 내화재 사용에 대한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입주민들이 참여하는 화재 대비 훈련이 필수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