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우리나라 가스소화설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Dr.risk 2014. 1. 10. 21:23

[연속기획] 신뢰성 잃어가는 가스계소화설비, 문제는 무엇인가 -Ⅰ
갈길 먼 우리나라 가스소화설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최영 기자
- 신뢰할 수 없는 우리나라 가스계소화설비 ‘기동장치’
- 제조 시점부터 놓친 주요부품 안전성, 신뢰성에 악영향
- 최소한의 규정도 없는 주요 부품들 “관련 규정 정립해야”

많은 소방관련 전문가들조차 신뢰할 수 없다는 우리나라 가스계소화설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뒤쳐진 관련 규정들과 너무도 급속하게 발전해 온 가스계소화설비 시장은 이러한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따르면 가스계소화설비에 사용되는 소화약제는 지난 2012년도를 기준으로 연간 수요가 900톤을 넘어섰다. 전기나 통신 등 특수 시설에서 초기 화재 진압을 위해 가스계소화설비를 채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소화설비에 비해 설치비용이 높고 설계와 시공도 까다로운 가스계소화설설비는 특수시설의 화재 소화를 담당하고 있는 주요 설비이기에 그 신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지(FPN)에서는 지난 11월 30일 발생한 한국전력 불량 소화설비 사태를 계기로 이러한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연속기획]으로 다룬다.

이 중 소화설비의 심장과 대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동용기와 기동라인, 용기밸브 기동장치 등 전반적인 기동장치의 현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안전성 확보 방안은 없는지 우선적으로 짚어본다.

성능검증 없는 가스계소화설비 기동장치
▲ 가스계소화설비의 기동장치 중 일부인 기동용기와 기동라인, 선택밸브 등의 모습 © 최영 기자
가스소화설비의 기동장치는 기동용기와 기동라인, 용기밸브 기동장치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는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제아무리 소화설비 약제와 배관설계를 완벽하게 적용하고 방호구역에 대한 안정성까지 확보했다 하더라도 기동장치가 정상 작동되지 않으면 설비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가스소화설비의 기동방식은 가스압식으로 적용된다. 화재신호 시 기동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를 동작시켜 기동용기를 열어주고 용기내 가스가 배관을 타고 이동해 선택밸브와 소화약제 저장용기의 밸브를 열어 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이러한 기동장치의 개별 부품들은 성능시험조차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소화설비의 신뢰성을 우선하기 보다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시공이 간편하거나 보편적인 부품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뢰성 저하의 주범 ‘기동용기’

전문가들은 기동용기의 가장 큰 문제로 “이산화탄소(CO2)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꼽는다. 이산화탄소를 사용한 기동용기는 소화설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설비의 유지관리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 국내에서는 실제 적용되는 용기의 모습. 기동용 가스로 이산화탄소를 사용하고 있다. © 최영 기자
기동용기의 가스는 충분한 유량이 확보되어야만 소화설비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기동용기는 가스계소화설비의 심장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성능시험 절차가 없어 최소한의 안전성조차 확보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동용기의 이산화탄소 사용 문제로 온도 변화에 따른 압력 저하와 유지관리상의 어려움을 지적한다.

일반적인 기동용기는 1리터 용기에 0.65kg의 이산화탄소가 충전된다. 이 때 20℃상온에서는 약 58bar의 압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온도에 따른 압력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소화약제저장실의 온도가 떨어질수록 이산화탄소의 압력도 저하되고 약 0℃에서는 압력이 35bar 정도로 낮아지게 된다.

이처럼 온도변화에 따라 압력이 심하게 변동되는 이산화탄소를 기동용 가스로 사용하면 화재시 소화약제 저장용기의 밸브를 안정적으로 개방시키지 못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 전문가는 “온도는 물론 기동라인의 길이와 체크밸브, 배관부속 등의 마찰손실까지 고려하면 최종적인 기동압력은 더욱 심각하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이 기동용기의 가스”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전문가도 “사계절의 특성을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온도에 따른 압력 변화가 큰 이산화탄소를 기동용기로 사용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설비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산화탄소 기동용기는 가스소화설비의 관리 과정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현재 이산화탄소 기동용기에는 가스 누설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별도의 압력게이지(지시압력계)가 장착되지 않는다. 압력과 온도에 따라 기체와 액체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유체(fluid)가 되는 이산화탄소의 특성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스계소화설비의 설치 이후 점검 등 관리를 하는 입장에서는 가스 누설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기동용기의 이산화탄소 누설이 소화약제 자체를 방출시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수 있음에도 누설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셈이다.

‘기동용기’ 선진국에선 질소 적용해

미국에서는 기동용기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온도에 따른 압력변화 폭이 낮은 질소(N2)를 기동용 가스로 적용한다.

▲ 실제 미국에서 사용되는 기용용기의 모습.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동용 가스로 질소(N2)를 충전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 최영 기자
NFPA기준에서 기동용기를 사용할 경우 모든 저장용기를 개방할 수 있는 충분한 유량을 갖추도록 하고 작동장치는 일반적으로 -29℃~54℃의 사용온도 범위내에서 성능을 확보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택밸브를 제외한 나머지 개별부품에 대한 성능검증이 전무한 우리나라와 다르게 미국의 성능시험 기준인 UL기준에서는 기동장치들에 대한 신뢰성 시험을 거치고 있다.

UL기준에서는 하나의 기동용기로 개방할 수 있는 저장용기의 최대 수량과 기동용기가 작동된 이후 저장용기 밸브가 개방되는 시간을 1초 이내로 제한하는 등 각 저장용기의 동시 개방 가능성도 사전에 검증한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 관계자는 “가스계소화설비 설계프로그램에 대한 성능인증 시 전체적인 설비가 문제없이 작동되는지 여부는 확인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설비의 부품 중 선택밸브 외에는 세부적인 성능검증을 거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가스계소화설비의 기동용기는 별도의 성능검증 없이 제조업체가 설계프로그램에 대한 성능인증을 받을 당시 적용했던 동일 부품이면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설비의 신뢰성 보다는 과거부터 보편화된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기동용기가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정소화설비 제조업계의 관계자는 “사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모두 질소로 기동용 가스를 사용하고 있는 건 알지만 국내에는 별다른 규정도 없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관련 규정도 없는데 굳이 개선할 이유가 없지 않냐”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그렇지만 이 문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 중 하나인 것은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동관으로 구성되는 ‘기동라인’도 문제

기동장치 중 하나인 기동라인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동용기에서 저장용기 밸브와 선택밸브로 연결되는 기동라인은 사람의 인체로 따지자면 대동맥과도 같다.

만약 이 기동라인이 찌그러지거나 구부러져 라인 자체가 막히거나 가스가 누설되는 경우엔 소화약제 저장용기를 열어줄 수 없고 결국 소화가스를 방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오게 된다. 그만큼 설비의 정상작동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국내 가스계소화설비 기동장치의 기동라인은 대부분 동관으로 구성되고 있다. 기동라인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을뿐더러 동관은 무게가 가볍고 확관 등 가공이 타 배관에 비해 쉽기 때문이다.
▲ 국내에서는 대부분 가스계소화설비의 기동라인을 동관으로 구성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30일 불량 작동한 한국전력 성동전력소 변전소에 실제 설치되어 있던 가스계소화설비에도 동관을 이용해 기동라인이 구성되어 있다. © 최영 기자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동라인에 동관을 적용하는 것은 설비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동관은 실제 시공과정에서 충격을 받아 손상되거나 확관 작업시 누설 문제를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미국 NFPA에서는 이러한 기동라인을 구부러짐이나 기계적인 손상이 발생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어 대부분이 후렉시블튜브(고압호스)나 스테인리스관 등으로 기동라인을 구성한다.
▲ 미국 등 선진국의 가스계소화설비 기동라인으로 고압호스나 스테인리스관을 적용하고 있다. ©최영 기자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동관 확관에 의한 방식은 누설의 정도가 심하다”며 “우리나라도 커플링 방식의 연결방식 또는 고압호스를 이용한 방식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경험상 현장의 동관 확관 연결상태를 점검해 보면 약 70% 이상이 엉망”이라며 “공사업체의 현장인원에 대한 교육도 시급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스계소화설비의 실질적인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기동라인의 재질과 설치방식에 대한 최소한이 제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성능검증 없는 용기밸브 기동장치
▲ 국내 가스계소화설비의 소화약제 용기밸브 및 기동장치(작동장치)의 모습. ©최영 기자
성능검증 없는 가스계소화설비 구성품 문제는 소화약제 저장 용기에 부착되는 기동장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화약제 저장용기의 기동장치는 수동조작과 기동용기에서 나오는 기압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저장용기 기동장치도 타 주요부품과 마찬가지로 작동압력이나 작동방식을 검증하는 절차는 없다.

미국 NFPA 기준에서는 이러한 가압식 용기밸브 기동장치를 성능시험을 통해 검증된 제품만을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UL기준에서 용기밸브의 기동장치가 일정 기준 이하의 힘으로 작동되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연결배관 구경에 따라 개방이 가능한 최대 용기 수에 대해서도 검증을 거친다.

그러나 국내에는 용기밸브 기동장치에 대한 검증절차가 없다보니 작동압력은 고사하고 품질 자체를 밸브를 공급하는 제조업체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스소화설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용기 기동장치의 신뢰성이 설비 자체의 성능을 흔들 수 있지만 사전 검증조차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사실 기동장치에 사용되는 봉판의 품질도 균일하지 않아 실제 작동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가스소화설비 주요부품 “신뢰성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관련 규정들을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성과 편의성을 우선시하는 시장 논리로 인해 제조업체나 시공 관계자들의 자발적인 개선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스계소화설비 주요 부품에 대한 관련 기술기준을 마련하고 국가 화재안전기준에서는 성능이 확보된 부품들을 적용하도록 유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가스계소화설비 선택밸브의 기술기준과 같은 각 주요 부품에 대한 최소한의 성능검증 기준을 정립하고 현행 화재안전기준에 부재한 기동장치 등 주요 부품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가스계소화설비는 소화약제와 배관망, 설비의 가동, 소화농도의 유지 등 어느 한 부분이 실패하거나 성능이 부족하면 소화에 실패할 확률이 그 어떤 설비보다 높다”며 “이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대책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꼬집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