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방재

종합건설업계 “민간발주 공사도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예외해 달라” 단체 행동 나섰다

Dr.risk 2022. 2. 22. 11:17

중대형건설사 23곳, 소방청장에 요청… 중대재해 조장, 계약자유 원칙 침해, 세금낭비 등 부작용

종합건설업계가 재건축ㆍ재개발ㆍ리모델링 공사 등 민간발주 공사에서도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예외사유’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해 눈길을 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e대한경제 DB

 

[e대한경제=임성엽 기자] 종합건설업계가 소방시설공사의 분리발주 의무화 시행 1년 6개월 만에 단체 행동에 나섰다.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시행 후 중대재해 조장, 계약자유의 원칙 침해 등 민간영역에서 속출하는 부작용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한국건설경영협회는 지난 9일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협회 회장 겸직) 명의로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예외사유 확대 건의’ 제하의 공문을 이흥교 소방청장에게 송부했다. 같은 달 15일엔 직접 소방청을 방문해 면담도 진행했다.

공문은 분리발주 ‘예외사유’ 확대건의서와 연명부로 구성됐다. 한국건설경영협회는 건설사업의 발전,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건설생산 전 과정에 종합적 관리능력을 갖춘 대형건설 업체를 회원으로 설립된 단체다. 이에 오세철 삼성물산 대표이사,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이사, GS건설 임병용 대표이사를 포함한 23개 대형건설사와 중견건설사 대표가 직접 연명부에 도장을 찍었다.

협회는 공문을 통해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화 의무화’와 관련해 회원사 의견수렴 결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공사(PF) △재개발ㆍ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공사 등 민간발주 공사도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예외사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예외사유를 공공 발주공사에 한정하지 말고 민간발주공사의 경우도 포함해 줄 것을 검토해 반영해 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건설경영협회의 건의 내용은 소방시설공사법 시행령 제11조의 2를 개정하는 방안이다. 소방시설공사 분리 도급의 예외 규정을 둔 시행령 11조2항 5호를 대안입찰 또는 일괄입찰, 실시설계 기술제안입찰 또는 기본설계 기술제안입찰로 시행되는 공사인 경우로 변경하고 6호와 7호, 8호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6호는 민간도급공사 중 재건축, 재개발 공사, 리모델링 공사, 우선시공분(Fast-Track) 방식 등 설계 미확정 공사에 해당한다. 7호는 프로젝트금융사업 또는 금융기관, 시행사, 발주자, 조합 등 건설사에 소방공사를 포함해 책임준공보증 또는 이에 준해 책임준공의 의무를 부담시키는 공사다. 8호는 신기술, 신공법이 반영된 공사, 특허공법(PC공법, 모듈러 공법 등)이 반영된 공사, 고난이도 공사 등 공사의 성질상 분리해 도급하는 것이 곤란한 공사를 지칭한다.

건설업 특성상 분리발주 불가능함에도 강행, 문제의 발단
종합건설업계에서 민간발주 공사도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예외사유’로 규정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제도 시행 후 1년6개월 간 각종 문제점과 부작용이 속출해서다.

앞서 소방청은 건설공사 시 저가하도급으로 인한 부실시공 방지를 이유로 소방시설공사업법과 시행령을 개정,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의무화 제도를 지난 2020년 9월 10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건설업 성격과 특성상 분리발주가 불가능함에도 법령과 시행령에서 분리발주를 의무화했다는 점이다.

PF보증 공사 등 민간 도급공사는 기본적으로 도급 이후 설계가 진행된다. 이에 설계도서가 없는 상황에서 분리발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PF보증공사는 건설사가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원의 사업비를 보증해 추진한다. 금융기관은 위험분산(리스크 헷지)을 위해 PF를 일으키는 순간부터 건설사에 책임준공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건설사 입장에선 설계도서도 없는 상황에서 도급이 분리된 소방공사까지 책임준공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재건축ㆍ재개발ㆍ리모델링 공사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입주민으로 구성된 조합에 의해 시공사가 선정된 이후 설계가 진행된다. 특히 이주비 등을 시공사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시공사에 전체공사에 대한 시공권이 주어지는데 소방공사만 분리발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도시정비 업계 관계자는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수주하는 것은 건설사가 전체 시공권을 확보했다는 점을 의미하는 데 소방공사 분리발주로 설계가 끝나고 다시 소방공사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 다른 건설사가 시공해야 해 건설사 입장에선 두 배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소방시설공사를 분리 발주하면 종합건설업체와 소방공사업체를 각각 선정해야 하는데 별도로 설계부터 입찰, 계약까지 행정은 물론 공사 관리 업무가 두 배로 발생하게 된다. 이는 결국 세금낭비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간이 발주한 대안ㆍ일괄ㆍ기술제안 입찰 등 기술형입찰 또한 분리발주의 예외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같은 기술형입찰 임에도 공사방식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뿐더러 공공공사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패스트 트랙 등 설계 미확정 공사는 기본적인 설계만으로 공사가 진행된다. 이 특성상 분리 발주를 하면 공정관리가 약화할 수밖에 없고, 공종간 간접까지 발생해 공기지연이 자명하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목적물을 정해진 기간 내에 완성하기 어렵다.

PC공법과 모듈러공법을 대표로 하는 신기술, 신공법은 물론 특허공법이 반영된 공사도 문제다. 설비/전기/통신/소방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구조물을 사전에 공장에서 일괄 제작해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방공종만 분리 시공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발전소ㆍ공항ㆍ항만공사ㆍ고층건물 공사 등 다양한 공종이 복합된 대형공사는 민간과 공공영역을 막론하고 분리발주 시 공사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공종간 간섭 발생은 물론 성능발휘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시설물 안전, 품질 저하 불 보듯… 정부가 앞장서 중대재해 조장하는 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소방공종의 분리발주가 의무화되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핵심 문제점은 이 제도가 오히려 중대재해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모순된 제도 자체가 시설물의 안전과 품질 저하로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시설공사 분리 도급 시엔 종합건설업체와 소방공사업체 사이엔 계약관계가 없다. 종합건설사가 소방공사업체를 관리나 감독할 의무나 권한이 없다는 설명이다. 결국, 건축, 토목 공종과 유기적 시공이 불가피한 소방시설에 대한 연쇄적 시공곤란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다.

앞서 발생한 두 건의 중대재해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20년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건과 지난 2014년 고양시외버스 종합터미널 화재사고는 소방시설공사를 분리 발주 한 결과, 안전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한 결과물이다. 고양시외버스터미널 화재와 관련,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검찰수사 결과, 소방시설공사의 분리발주가 화재 발생 위험을 가중시킨 과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소비자인 건축주의 공사발주 선택권과 계약자유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점도 문제다. 분리발주 여부를 소비자가 제반사정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함에도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의무화로 건축주의 공사발주 선택권은 물론 계약자유의 원칙까지 침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로 공종 간 책임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아킬레스건이다. 준공 후 하자나 부실시공 발생 시 원인 규명이 어렵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 소비자만 고스란히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인천 대정초등학교 강당 준공 직후 화재전소 사건이 그 증거다. 이 사건은 분리발주 탓인 책임 불분명으로 인천교육청이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를 의무화하더라도, 건설공사의 성질상 분리발주하는 것이 불합리하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공사는 분리발주 예외사유에 포함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