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안전

출연연 구조조정, 마음대로 안 될걸?

Dr.risk 2010. 6. 11. 00:12

출연연 구조조정, 물 건너가나?
지방선거 참패, 과학계 4대강 출연연 개혁 향방에 관심
과학자들 "연구 현장과 소통 우선" 한 목소리
추진주체 일부에서도 "동력 상실"…회의적 반응

'6·2 지방선거가 과학기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6·2 지방선거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4대강·세종시와 같은 일방적 정책 추진 전략을 다시 짜라는 경고장을 날렸다. 일방적 정책 추진에서 소통의 정책 추진으로 선회하라는 민심 앞에 MB 정권이 압도당한 셈이다.

이번 선거가 과학기술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 들어 야심차게 추진됐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구조조정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 선거 패배가 이 대통령의 집권 환경을 크게 약화시킴에 따라 전체적인 출연연구소 개편 추진에 힘을 받지 못하거나,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많은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사실 MB 정권에서 '출연연 구조조정' 프로젝트는 '출연연이 변화해야 한다'는 개편 당위성만 갖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돼 왔기 때문에 과학기술계의 4대강 사업으로 통해 왔다고 과학자들은 토로했다. 과학자들은 일방적으로 연구소 통폐합 이야기 나오자 '이건 또 뭔가'라고 당황해 하는 반응이 역력했고, 또 다시 연구현장은 술렁거렸다.

선거 이전만 하더라도 4대강 사업처럼 출연연 구조조정도 순식간에 실현될 분위기였고, 연구현장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때문에 출연연 구조조정의 총대를 멘 과학기술계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위원장 윤종용)의 행보가 주목받아 왔다.

일본의 AIST 모델을 표방한 출연연 구조조정안이 산업기술연구회에서 나오자,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들은 왜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느냐'는 교육과학기술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연구현장에서 큰 화두로 불거지기도 했다. 국가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출연연 개혁에 나선 모습 보다는 다른 정부 소속 출연연이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이고 막연한 정책 추진 분위기가 흘렀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이번 선거에서 '일방적 정책 추진은 안된다'라는 민심의 심판이 내려지자 연구현장에서는 민간위의 출연연 구조조정 추진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현장 과학자들은 민간위의 출연연 혁신안이 발표되더라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민간위 활동은 일방적 추진에 동력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가장 큰 이유는 출연연 개혁안 추진 과정이 현장 과학기술인들과 소통이 부족했던 것. 이번 선거에서 MB 정권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가로막은 민심의 벽이 출연연 구조조정 추진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연구현장은 판단하고 있다.

출연연 개혁 추진주체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민간위 뿐만 아니라 청와대나 정부, 연구회 등에서도 출연연 구조조정을 무리해서 추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분위기. '이대로라면 출연연 구조조정은 추진될 수 없다. 물건너 간 것으로 봐야 한다' 등 자조의 말이 흘러 나온다. 민간위원회에서도 조심스럽게 청와대의 정확한 의중을 살피고 있는 양상이다. MB 정권은 민심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기존 국정 추진 방식을 소통의 방향으로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것으로 각계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민간위원회 활동과는 별개로 국무조정실은 연구현장 민심을 살피기 위해 이달 중순경 출연연 기관장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당초 민간위는 출연연 구조조정안을 지난 5월 발표키로 했지만 선거 이후로 발표를 연기한 바 있다.

연구현장은 출연연 변화를 위한 모든 정책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기존 방식을 탈피해 긍정적인 소통의 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이번 선거로 더 이상의 일방적 정책 추진은 힘을 받지 못하게 됐다"면서 "하루 빨리 출연연 변화를 위해 정부가 과학기술계 소통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출연연 한 과학자는 "일방적으로 추진된 출연연 구조조정은 이미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은 이슈"라며 "세계 일류 과학기술을 정부가 원한다면 무엇보다 변화를 위한 연구현장과의 소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또 L 출연연 A 박사는 "통폐합으로 이어진다는 출연연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그것보다는 출연연의 안정적인 연구 환경, 즉 연구원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쪽으로 재편해야 한다"며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무리를 두지 말고 많은 연구자들의 긴밀한 소통을 기반으로 긍정적인 정책 효과가 창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