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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소방연구원으로 거듭난 소방과학연구실

Dr.risk 2019. 6. 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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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국립소방연구원으로 거듭난 소방과학연구실… 소방 미래 연다!

소방역사 43년, 연구실 태생 28년 만에 탄생한 ‘국립소방연구원’
중앙소방학교 과 단위 실 → 1과 3연구실 전문기관으로 재탄생
소방 R&D 컨트롤타워 역할 더해 화재조사 중심 기관 위상 기대
“최소한 3년은 앞당겼다” 국립소방연구원 탄생 뒤 숨은 이야기

 

 


“소방에는 연구기관다운 곳이 없다. 소방의 과학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소방의 발전을 위해서는 조사와 분석을 거친 연구의 환류 정책이 필요하다”

 

소방공무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정책, 화재조사에 필요한 감식과 감정의 과학화, 화재예방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까지. 소방은 이 모든 것을 소방청이라는 중앙 부처 내 과별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다.


산업은 물론 행정에 있어 ‘과학화’는 필수 요소지만 유독 소방에서 이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소방 내에는 연구기관다운 곳이 없었던 탓이다.


다른 정부부처와는 대조적이다. 유사 조직인 경찰만 봐도 경찰청 소속에는 치안정책연구소가 존재한다. 현장을 지원하는 독립된 연구기관이다. 치안에 관한 이론부터 정책, 수사절차와 제도, 법제 분석과 수사 기법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소방의 현실은 어떨까. 불과 2년 전만 해도 연구직 7명을 포함해 12명이 소방청 소속 중앙소방학교의 과 부서 수준인 ‘소방과학연구실’에서 이런 역할을 전담해 왔다. 1991년 4월 23일 한 손에 꼽히는 소수 인력만으로 처음 태생한 연구실은 16년 만인 2007년이 돼서야 연구인력 2명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탄력적으로 인력 충원 물살을 타면서 지금의 정원인 22명이 됐다. 42년 만에 소방청으로 독립한 게 기폭제로 작용했다.


사실 그동안 소방과학연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화재 감식과 감정, 현장안전 사고조사 분석을 비롯해 위험물 판정과 소방 R&D사업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20건이 넘는 화재 감식과 670건 이상의 화재증거물 감정, 630여 건의 위험물 판정, 180여 건의 재현실험, 50건 가까운 연구과제 수행과 7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연구개발이라는 실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이 연구실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같은 조직 내 소방공무원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앙소방학교의 일개 부서로만 인식됐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드디어 소방의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새롭게 출범한 ‘국립소방연구원’의 탄생이 바로 그 시작이다.


소방조직의 체계적인 현장 지원과 연구 그리고 화재조사의 과학화를 위해 ‘국립소방연구원’은 2019년 5월 14일 첫발을 뗐다. 연구실 태생 후 독자적이면서도 진정한 연구기관으로 발전하기까지 장장 2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과연 국립소방연구원은 어떤 형상을 갖추게 될까. 이 연구원의 탄생은 소방에서 무엇을 의미할까. 소방 과학화의 시작을 알리는 ‘국립소방연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국립소방연구원, 어떤 모습일까
5월 14일 공식 출범한 국립소방연구원의 모습은 아직 완벽하게 갖춰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직제상 기존 소방과학연구실과 비교할 때 인원과 조직 위상 측면에선 대대적인 변화가 생겼다.


우선 기존 중앙소방학교 과 단위에서 벗어나 소방청의 1차 소속기관이 됐다. 관련법(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되면서 어엿한 ‘책임운영기관’으로 거듭나 소방연구 기능을 담당하게 됐다.


책임운영기관은 중앙행정기관의 소속 기관 중 집행상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조직, 인사, 예산상의 자율성을 보장해 기관운영의 책임성과 대국민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는 기관을 말한다. 소방연구원은 소방청이라는 중앙행정기관의 유일한 국립 연구조직이다.


22명에 그쳤던 정원도 원장을 포함해 43명으로 늘어났다. 기존 소방직 10명, 일반직 1명, 연구직 11명에서 소방직 9명과 일반직 2명, 연구직 8명, 전문경력관 1명이 늘어난다.


고위공무원이 맡게 되는 초대 원장은 임기제 개방직으로 공모한다. 고도의 전문성 직위라는 점을 고려해 인사혁신처와 협의를 거쳐 빠르면 3개월 안에 부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조와 구급, 생활안전, 소방시설, 소방산업 등 종합적인 연구수행을 위한 연구인력에 대한 공모도 진행된다.


조직 구조에도 큰 틀의 변화가 생겼다. 기존 중앙소방학교 내 하나의 과 형태였던 연구실은 지금까지 팀 체제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이젠 연구원에는 1개 과(연구기획지원과)와 3개 연구실(소방정책연구실, 화재안전연구실, 대응기술연구실)이 들어섰다.

 

 

 

 

국립소방연구원 출범이 던지는 의미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관련 부처에는 과거부터 독립된 전문연구기관이 존재했다. 체계적으로 현장을 지원하고 관련 정책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치안정책연구소, 국립산림과학원, 해양경찰연구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의 경우 가까운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과 캐나다, 미국, 영국, 호주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방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소방연구원의 탄생은 그만큼 소방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표면적으로는 소방만을 위한 독자 연구기관, 어엿한 소방청의 직속 연구기관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5만 명이 넘는 소방인력 뒤에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다는 사실은 소방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기틀이 마련됐음을 나타낸다. 재난의 복합ㆍ대형화 추세에 들어선 현대 시대에는 실효성을 갖춘 예방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방정책 대부분은 체계적인 조사나 연구를 거쳐 마련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형 사고를 겪을 때마다 서둘러 수립되는 근시안적 대책은 이런 실정을 방증한다.


효율적인 현장대응을 위한 기술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 변화에 따른 첨단기술이나 신기술이 개발되는 등 환경은 꾸준히 변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소방의 기술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이 역시 재난대응에 필요한 것들이지만 산업화조차 이뤄내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소방의 대응기술과 첨단장비 개발, 체계적인 R&D를 위해선 이를 연구하고 검증하기 위한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소방 연구를 위한 토대는 바로 이 ‘국립소방연구원’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방정책이나 소방장비의 성능평가부터 소방공무원의 안전과 직결되는 보건ㆍ복지 제도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조사와 연구를 거쳐 정책에 환류하는 시스템을 기대할 만 하다는 얘기다.

 

소방 씽크탱크의 길 ‘START’
국립소방연구원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소방 전문연구기관의 위상을 갖춰 나가게 된다. 미래의 소방정책을 설계하고 첨단 소방기술을 연구한다. 나아가 소방장비 선진화를 이루는 R&D 컨트롤타워의 위상을 갖추는 게 목표다. 화재조사(감식ㆍ감정)를 주도하는 소방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소방정책과 화재안전기준의 연구ㆍ개발, 위험물 판정ㆍ시험, 소방기술 연구ㆍ개발과 현장실용화 연구 등이 소방연구원의 중심 업무다. 소방 R&D 확대와 과학기술기반의 현장대응 기술을 개발하고 현장 실용화를 위한 연구기능도 대폭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소방용 무인비행장치(드론)의 전담 상설팀을 운영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소방공무원을 드론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한 전문교육과정을 신설하고 드론이 필요한 재난현장에서 운영팀을 투입시키는 역할도 맡게 된다.


국립기관의 타이틀을 내걸게 된 소방연구원은 작년부터 공공ㆍ민간 화재안전연구기관들과의 협업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4월 26일에는 화재안전연구기관 협의체 발전을 위한 세미나도 열었다.


이 협의체에는 한국화재보험협회 부설연구소인 방재시험연구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한국소방산업기술원,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등 국내 주요 연구기관들이 참여한다. 벌써부터 국내 소방분야 연구의 구심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립소방연구원은 관련 기관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최적의 협업체계를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또 소방청의 화재안전합동조사단 출범과 함께 국가화재안전기준 연계를 위한 위원회 운영도 구상 중이다.


 

 


최소 3년은 앞당겨 만들어진 ‘국립소방연구원’
국립소방연구원의 탄생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 뒤에는 설립 추진 업무를 맡아 발로 뛴 소방청과 연구실 직원들 등 내부에만 알려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사실 소방에서는 당초 소방과학연구실을 연구소로 우선 승격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2019년인 올해를 기점으로 소방청 소속기관인 연구소로 먼저 개편하고 중ㆍ장기적으로는 국립소방연구원을 설립하는 게 목표였다.


이 계획으로 따져보면 연구원의 출범은 최소한 3년은 앞당겨진 셈이 된다. 그 뒤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 전 장관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김부겸 전 장관은 “과거 아산에 있는 소방과학연구실에 가본 적이 있는데 폐교를 빌려 만든 연구실에 고작 7명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참담했다”는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김 전 장관은 부임 후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18년 3월 23일 연구원 설립 추진을 지시했다. 4월 23일 국립소방연구원의 기본 계획이 만들어졌다. 두 달 후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직제 변경을 위한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기재부는 소방연구원의 예산투자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이 연구는 4개월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기재부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1차 소속기관으로 연구원을 두는 게 불가하다고 통보해 왔다. 애초 계획한 인력 증원 규모도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국가 예산을 관리하는 기재부의 검토 결과는 그야말로 허탈하기만 했다. 기재부를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김부겸 전 장관은 임기 내 연구원 설치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그리고 올해 1월 16일 조정안을 마련해 기재부와 조속히 협의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완강했다. R&D 규모가 작아 1차 소속기관으로 설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연구원의 소방직 증원 인력 규모도 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 전 장관의 의지를 기반으로 기재부 설득에 나선 행안부와 소방청은 “R&D 규모가 작은 것은 맞지만 그동안 소방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은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며 맞섰다. 끝내 연구원은 22명인 정원을 50명까지 늘리려는 계획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43명 수준의 ‘국립소방연구원’을 만드는 것으로 협의점을 찾았다. 그렇게 국립소방연구원은 산통을 겪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김부겸 전 장관은 연구원 설립을 두고 “현대 과학이 발전하고 도시가 점점 거대화되면서 화재 유형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화재의 원인을 알아야 예방이 가능하고 진화 방법을 알아야 인력과 장비가 헛수고하지 않는다”며 “소방과학연구실 수준으로는 대응이 안 되는 시대가 온 것이기에 새롭게 탄생한 국립소방연구원이 이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