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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의 문자, 한글 "날개를 펴라"

Dr.risk 2011. 10. 24. 23:34
[기고]글로벌 시대의 문자, 한글 "날개를 펴라"
글: 신부용 KAIST 한글공학연구소 소장
▲신부용 KAIST 한글공학연구소 소장
ⓒ2011 HelloDD.com
한글창제 565 돌을 보냈다. 각종 행사가 열리고 한글이 세계로 뻗어 나간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한글을 그 정도로밖에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앞으로 한글이 100조원의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라 하며 어떤 이는 100만 명의 젊은이들이 한글 전도사가 되어 세계 각지로 나가게 될 것이라 한다.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 글자인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런 말을 허황스럽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글자는 말을 담아두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자를 읽으면 다시 말이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가히 세계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는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읽는 것이다. abcd 알파벳을 다 배웠어도 'girl'이란 단어의 스펠을 모르면 뜻을 모를 것이고 발음을 따로 익히지 못했다면 제대로 읽어 낼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는 중국글자는 글자 자체가 어려워 국민의 태반이 읽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글을 읽으면 말이 되는 글자는 세상에 한글뿐이다. 배우기 쉬울 뿐 아니라 그저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되고 그 글자를 읽으면 바로 말로 복귀된다. 물론 문법과 철자법에 좀 어긋날 수 있겠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한글을 깨우친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처음으로 한글을 깨우쳤다는 할머니가 주저 않고 손자에게 편지를 쓴다. 그 뿐이 아니다. 아마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금세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 중에는 컴퓨터 채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한글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미국 시각장애인이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우선 단추를 찾아 세 번씩 눌러가며 알파벳을 골라 입력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렇다 하더라도 단어의 스펠을 외웠다가 기억해 내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그들은 문자메시지가 오면 소리로 변환시켜 들을 수는 있어도 문자를 써서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로마자로 입력하여 중국글자로 전환시켜야 하는 중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영어처럼 단어를 표기하려 만든 것도 아니고 한자처럼 글자에 뜻을 두고자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소리 나는 대로 그 소리를 적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정인지는 세상에 소리가 있으면 글자가 있다고 했다. 그 소리가 개 짖는 소리건 바람 소리건, 영어건 중국어든 상관없다. 귀에 들리는 대로 기록했다가 읽으면 다시 알아듣게 되어 있다. 마치 녹음기의 음파를 가장 간단한 도형으로 그려 놓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훈민정음의 기본 소리는 아래 각 10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표기 될 수 있고 나머지는 이를 조합하여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10 이라는 수는 바로 디지털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20개의 소리코드로 나타내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개의 한글 소리코드로 30만 개의 유니코드를 대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코드

1

2

3

4

5

6

7

8

9

0

자음

모음

미국이나 중국 등 어느 나라의 시각장애인들도 한글을 깨우치고 나면 그들의 말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을 것이며 문자메시지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입력한 한글을 다른 사람은 읽지 못할 것이므로 다시 자국의 철자법으로 고쳐 출력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아이폰에서 무료로 다운이 가능한 '흅스(Hangul-based Universal Phonetic Script, HUPS)'라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여 상용화시켰다. 이 앱을 열어 '걸'이라 입력하고 영어 전환단추를 누르면 'girl'로 바뀐다.

앞으로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 언어로 그 대상을 넓혀 누구나 한글만 깨우치면 자기네 나라 말을 쓸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는 곧 이들 나라의 문맹율을 우리나라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문맹인의 비애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한국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IT는 문맹과는 또 다른 컴맹이라는 더 큰 소외계층을 만들어 지식과 정보에의 접근을 차단시키고 있다.
지식과 정보의 차단은 빈곤을 낳고 빈곤은 불만, 불만은 반사회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월가 소요의 근본 원인이 이와 같은 불만에서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억설일까? 부자가 재산을 나누어야 하듯 지식인들도 지식의 벽을 허물어 줘야 한다.

누구나 한글은 우리의 최고 문화재라 한다. 세계의 모든 언어학자들도 한글을 접해 보기만 하면 단연 최고의 문자시스템임을 인정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영어의 위력에 사로잡혀 영어자판에 한글을 올려놓는데 급급하고 있다.

한글입력이 편하도록 자판을 만들고 그 위에 알파벳을 올려놓은 모바일 컴퓨터가 만들어져 세계 모든 나라의 시각장애인과 문맹인들에 보급될 때, 그래서 비장애인들도 따라 쓰게 될 때, 새로운 문자시대가 열릴 것이며 우리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소프트웨어 절대 강국이 될 것이다. 아마 100조원으로 만족하지 않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위에서 보인 바와 같이 한글은 디지털에 가장 적합한 문자임을 살리고 또한 모바일 화 되어가는 컴퓨터 발전 추세에 맞추어야 한다.

디지털과 모바일 이 둘이야말로 한글이 아직 쓰지 않고 있는 양 날개임에 틀림이 없다. 이 양 날개를 힘차게 펼칠 때 한글은 하늘 높이 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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