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닷새에 한 번 꼴로 불나는 대학교… 안전불감증 심각

Dr.risk 2022. 1. 29. 08:01

이번달 서울대서 화재 2번… 지난해 중앙대·인하대 등서 화재
2020년 48건에서 작년 71건으로 늘어
인화물질 많아 대형사고 가능성도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1층에는 ‘출입금지’ 띠가 쳐져 있었다. 깨진 유리와 소화기가 바닥에 굴러다녔고, 벽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전날 오후 같은 건물 1층 방재실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다. 이 화재로 방재실 인근 기숙사에 거주하던 학생 16명은 연기를 마시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기숙사 거주 학생인 이모씨는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11일에도 서울대 22동(자연과학대학) 2층 실험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실험실 인근에는 ‘화기 절대 엄금’이라고 적힌 고압헬륨가스 저장소가 있었고, ‘인화성물질경고’ 등의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헬륨가스는 인화성은 없지만, 저장통에 열을 가하면 폭발할 수 있어 파편으로 인한 부상 위험성이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화재 예방 등 대학의 안전관리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1층. 입구에는 출입금지가 적힌 띠가 쳐져 있고, 벽에는 그을음이 생겼다./채민석 기자

최근 대학 캠퍼스 내 연구실과 기숙사 등의 시설에서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위험 물질을 다루는 연구실과 실험실에서도 화재가 일어나고 있어 인명피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기 전 전조 증상이 자주 보이는 ‘하인리히 법칙’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대학 연구실과 실험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으며, 관리 주체인 대학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중앙대 교수연구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스프링클러는 연구실 외부에 있어 작동하지 않았다. 인하대의 경우 지난해 3건(1월에 2건, 6월에 1건)의 화재가 일어났다. 지난해 1월 초에 발생한 화재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인지하고 소방서에 신고할 만큼 규모가 컸다.

 
지난 11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대 22동 2층 실험실 인근에 있는 헬륨가스 저장소./채민석 기자

27일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71건으로 집계됐다 5일에 한 번 꼴로 불이 난 셈이다. 대학교 화재는 2020년(48건)에 비해서 약 48% 늘어났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대학 캠퍼스 화재로 사망자가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대학교에서 발생한 화재 중 35%(25건)는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일어났다.

대학원생 등은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점을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씨는 “학교 연구실에서 안전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을 하는 주체가 사람이라 인재로 인한 사고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면서 “연구실에서 주기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관련) 동영상을 틀어두기만 하고 시청에 집중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을 살펴보면 ▲전기적요인 29건 ▲부주의 15건 ▲기계적요인 14건 ▲화학적 요인 7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국내 대학교 화재발생현황./소방청 제공, 그래픽=손민균

대학교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학생이나 인근 주민들은 불안을 호소한다. 서울대 재학생인 이모씨는 “올해에만 두 번의 화재가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불안하다”며 “작은 사고가 모여 큰 재해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학교 측에서 안전관리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인화성 물질을 취급하거나 인근에 고압가스 저장소가 있는 경우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면서 “연구실과 실험실을 편의상 같은 공간 안에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분리해야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