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소방공무원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Dr.risk 2010. 11. 12. 21:12

소방공무원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소방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심각’
36.8% 고위험군 … 10.64% 전문적 치료 필요
전문적 치료 가능한 소방병원 절실
 
신희섭 기자
최근 소방공무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장애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소방공무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하고 이를 감소시키기 위한 제도적 접근이 실로 미약하기만한 실정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제48주년 소방의 날’을 맞이해 소방공무원들에게 치명적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해 알아보고 그 대책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란 무엇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적인 장애를 말하며 주로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재해ㆍ재난사고와 화재, 전쟁, 신체적 폭행, 강간, 차량 사고 등을 겪은 뒤에 발생하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의 주된 임상양상은 충격적인 사건을 재 경험하거나 사고와 관련된 상황ㆍ자극에서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질환은 사건 발생 1달 후 심지어는 1년 이상 경과된 후에 시작될 수도 있으며 환자는 해리 현상이나 공황발작을 경험할 수도 있고 환청 등의 지각 이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또 연관 증상으로 공격적 성향과 충동조절 장애, 우울증, 약물 남용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등의 인지기능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



소방공무원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얼마 전 경기도 소재 한 소방관서에서 고가사다리차 조작 훈련 중 2.8m 높이의 소방차량에서 소방관이 떨어져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훈련에 참여한 소방관들은 형제처럼 지내던 동료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그날을 평생 슬퍼하고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소방공무원들은 직무상 특성으로 타 직업군보다 쉽게 동료의 죽음은 물론 자살 현장이나 대형교통사고, 건물붕괴 등 사고현장에서 절단이나 장기탈출 등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동료의 사고와 죽음은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반복하게 하고 이는 곧 두려움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인천서부소방서 원당119안전센터 박지인 소방사는 “각종 재난현장에서 소방공무원들은 수많은 사고를 목격하고 충격적인 현장을 접하게 된다”며 “국민들에게 슈퍼맨으로 인식된 ‘소방관’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참아내며 묵묵히 견디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지인 소방사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쌓여왔던 외상 후 스트레스를 이젠 그만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서적인 지지와 그 사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라며 “스트레스 요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문적인 훈련 및 교육이 앞으로는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방관 36.8% 고위험군 … 실효성 있는 정부대책 필요

최근 소방방재청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소방공무원의 36.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CAPS(임상가용 외상 후 스트레스 진단 척도)를 통한 진단은 10.64%가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외상적 사건의 정신적 충격은 소방공무원들의 감정 및 기억 등에 연관돼 몸의 신경과 뇌에 영향을 주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진단 및 대처가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방과학연구소 한동훈 연구관이 최근 소방방재청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사 직업군인 경찰공무원과 해양경찰공무원에 비해 소방공무원의 외상 빈도가 월등히 높았으며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는 외상은 ‘처참한 시신 목격 및 수습’이다.

또 보고서는 유사 공무원들과 비교해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의 노출 정도를 비교했을 때 소방공무원이 고위험군에 평균적으로 2배 이상 더 노출되고 있으며 현장업무로 인한 직무스트레스 역시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한동훈 연구관은 관련 웹 프로그램 구축을 통해 소방공무원 스스로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자가진단하고 이를 통해 대처법과 심리관련 질환의 치료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관련전문가들은 소방공무원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극복을 위해서는 관련 프로그램 개발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정부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화재진압 및 구조ㆍ구급 등 가장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119안전센터의 업무축소와 정신건강 및 심리적 안정을 위한 교육 강의 등을 더욱 확대하고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이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방업무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병원 설립 ‘절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의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또다시 소방병원 설립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도의 산업화와 지식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소방 또한 업무의 범위가 점차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에 따른 소방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고현장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면서 타 직업군에 비해 소방공무원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더욱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는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소방공무원 개인의 안전은 물론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되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소방공무원들은 업무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 내실 있는 건강검진과 더불어 소방 활동과 관련된 각종 의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소방병원의 설립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관련전문가들 역시 이 같은 소방공무원들의 의견에 동참하고 있다. 소방공무원들이 업무에 종사하는 동안 겪을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단시간에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므로 소방업무를 이해할 수 있는 병원에서의 치료가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인터뷰 - 서울중부소방서 현장지휘대 경광숙 대장
“PTSD, 조직의 배려와 이해 필요”

서울중부소방서 현장지휘대 경광숙 대장은 20여년전 현장에서 구조업무를 하던 중 7층 높이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 사고로 인해 입은 부상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인해 경광숙 대장은 18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병원에 다녀야만 했다고 한다.

사고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몸에 난 상처가 아닌 직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라고 말하고 있는 경광숙 대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조직의 배려와 이해”라고 강조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장애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극히 꺼려하고 있으며 좋지 않은 사회적 관념 때문에 심지어 가족에게도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노출이라도 되면 당장 주위 동료들이 먼저 당사자를 회피하고 상황이 지속되면서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되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된다고 한다.

경광숙 대장은 “소방공무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쉽게 노출 되고 있으며 그 수가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조직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 각 시ㆍ도 소방본부별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관련한 순회교육 및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좀 더 조직적인 차원에서의 현실적 대책마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가장 좋은 치료제는 휴식”이라며 “조직 여건상 정원을 늘려주지 못한다면 타 조직과 같이 예비요원을 확보ㆍ운영하는 등 조직 운영의 묘라도 살려 줬으면 한다”는 바램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