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발딩

외국 방재 대책은 우리와 뭐가 다른가

Dr.risk 2010. 10. 8. 21:40

[해운대 고층건물 화재… 외국 방재 대책은 우리와 뭐가 다른가]

국내 15~49층 빌딩은 방재규정 허술한 '사각 지대'

초고층빌딩에서 화재 등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대(大)재앙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각종 안전시설에 들어가는 시설비용은 건축주와 입주민이 떠안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늘더라도 안전을 위해 강제 조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국내 건축법상 초고층빌딩은 50층 이상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소방방재청은 일단 이 초고층빌딩에서의 재난예방 및 피해경감 계획을 수립하고 종합방재실과 피난안전구역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3일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특별법은 지난달 30일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해 연말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건축물은 건립하기 전에 시·도 사전재난영향평가 검토위원회로부터 재난영향에 관한 심의를 거쳐 그 결과를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문제는 1990년대 말부터 본격 건설되기 시작한 주거복합용 준(準)초고층빌딩(15~49층)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소방차에서 뿌린 물이 닿을 수 있는 최대 높이는 15층 정도이고, 소방 고가사다리가 닿을 수 있는 최대 높이도 52m(15~18층) 정도여서 15층 이상 모든 건물에서는 화재 대응이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준 초고층빌딩에 대해서 스프링클러 설치 등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건축법 등에 규정돼 있을 뿐 피난안전구역(피난층)이나 물탱크 및 연결송수관 설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의무규정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는 외벽에 가연성(可燃性) 페인트… 외국선 안타는 마감재 의무화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 빌딩… 4개층에 피난안전구역 설치, 불 나도 2시간은 끄떡없어
뉴욕선 소방서와 직통 라인… 日엔 신속반응 스프링클러

황금색 패널로 치장한 부산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가 지난 1일 불에 타면서, 겉멋만 요란한 국내 고층빌딩의 재난예방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첨단 방재시설로 무장한 세계 최고 인공구조물인 '부르즈 칼리파'(160층, 828m) 등 외국의 초고층빌딩과 우리의 고층빌딩 방재 대비 현황을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우신골든스위트뿐 아니라 국내 고층빌딩들에서는 최근에도 작은 화재들이 이어져 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제2·제3의 '타워링' 언제든지 일어난다

초고층빌딩에서 화재가 일어나면 어떤 재앙이 닥칠지를 사실감 있게 그려낸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고전(古典) '타워링'(1974년 작)이 지난 1일 부산 해운대에서 현실로 나타날 뻔했다. 이런 화재는 우신골든스위트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2008년 서울 강남역 인근의 20층 높이 파고다타워 빌딩 7층에서 불이나 소방대원 2명 등이 다쳤고, 작년 10월에는 서울 강남 파이낸스센터(45층)에서 불이 나 2명이 질식해 병원에 실려가는 등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건이 있었다. 1971년 163명이 숨지며 최악의 화재 사건 현장이 된 서울 대연각 빌딩에서는 지난 2월에도 옥상 냉각탑에서 화재가 발생해 대피 소동이 벌어졌고,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신관 11층 식당가에서도 지난 6월 화재가 발생해 직원 200여명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이렇듯 화재는 빈발하지만 방재 대책은 외국에 비해 얼마나 부족한지를 이번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는 단적으로 보여줬다.

우신골든스위트는 외관을 살리려 외벽 마감재로 가연성 알루미늄 패널과 단열재를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불이 급격하게 번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아파트 외관이 화려한 황금색을 띨 수 있던 것은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하고, 이 패널 바깥쪽에 특수 페인트를 칠해 색을 냈기 때문이다. 미국 외장재 전문회사 센트리아(Centria)의 심천보 수석엔지니어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발화성이 높지만 값이 싼 알루미늄 패널 종류를 고층 건물 외부에 쓰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축업계에서는 이 특수 페인트가 불길을 옮기는 작용도 했다고 설명한다. 아름다운 외관을 살리려다 화재 안전은 뒷전으로 밀어놓았던 셈이다.

이에 비해 부르즈 칼리파 등 외국 초고층 건물들은 철저히 마감재를 불연재로 사용한다. 부르즈 칼리파는 또 42·75·111·138층 등 4개 층에 마련된 피난안전구역을 특수 방화재로 마감했다. 이 구역은 외부 공기만 받아들이도록 설계해 불이 나도 문을 닫고 2시간가량 피신할 수 있다.
타이베이 101빌딩,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 미국 뉴욕의 대다수 빌딩도 마감재는 불연재를 썼다.

이번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때는 대피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지만, 부르즈 칼리파는 디지털 장비가 불통됐을 때를 대비해 사람이 직접 육성으로 경보를 전파하는 시스템까지 갖췄고, 피난계단 안에도 통신설비를 넣었다.

외국 초고층빌딩들에는 피난안전구역도 철저하게 만들어져 있다. 타이베이 101빌딩에는 8개 층마다 피난안전구역이 촘촘히 설치됐고, 미국
뉴욕 타워세븐 빌딩(50층)에서는 중간 로비가 피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빌딩에는 이런 피난안전구역이 없다.

◆외국 방재계획, '예술의 경지(state of the art)'를 넘어선다

국내 고층빌딩의 허술한 방재계획에 비해 외국에는 다중의 방재 계획과 시설을 갖춘 곳이 많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타워7 빌딩은 주 출입구 외부에 장애봉을 설치하고, 전면 유리는 잘고 모나지 않게 깨지는 안전 붕괴 시스템을 갖췄다. 내부 건물 중심은 비행기 테러에 의한 충격에도 붕괴되지 않도록 구조안전이 강화됐다. 화재에 대비해 방화문 주위에는 열 감지 센서를 설치했고, 인근 소방서와는 직통 라인까지 개설했다. 부르즈 칼리파도 테러에 대비해 외벽 밖에 충돌방지용 콘크리트벽을 세웠고, 차량 스캐닝 장비도 따로 설치해 운영 중이다. 부르즈 칼리파는 비상시 풀장 물을 소화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계획됐다.

일본요코하마 랜드마크빌딩(69층)은 스프링클러도 일반 스프링클러보다 빠른 '신속반응 스프링클러'를 갖췄다. 화재에 대한 반응 시간이 120~180초인 일반 스프링클러보다 3배 빠른 30~90초 정도에 반응하는 스프링클러를 갖췄다.

고층빌딩의 아킬레스건 '굴뚝효과'

  • 건축물 아래와 윗부분 기압差로 내부 공기, 통로 따라 밀고 올라가
    꼭대기층까지 순식간에 번지게 돼

지난 1일 오전 11시 34분쯤 부산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4층에서 시작된 불은 불과 20분 만에 38층 꼭대기까지 번졌다. 초고층 빌딩의 화재는 이같이 급격히 확산되는데, 그 비밀은 '굴뚝효과'에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굴뚝효과(stack effect)'는 건축물 아래와 윗부분의 내부와 외부 온도·기압 차이로 인해 건물 내부 공기가 굴뚝과 같은 긴 통로를 따라 쭉 밀고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고층 빌딩일수록 불길이 상승기류를 타고 급속하게 번지는 '굴뚝효과'가 강하게 일어난다. 비상계단이나 쓰레기 집하장 통로, 엘리베이터 승강로 등이 '굴뚝'과 같은 긴 수직 통로 역할을 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화재 확산 시 피난 통로 바람 속도가 30배까지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는 2001년 9·11테러로 붕괴되기 전인 1993년에도 폭탄 테러를 당한 적이 있는데, 당시 지하 2층 주차장에서 폭탄이 터지며 발생한 연기와 먼지가 엘리베이터 승강로를 타고 몇 분 만에 45층까지 확산됐다. 유독가스가 번지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 6명이 사망하고 1045명이 부상했다.

이런 굴뚝효과 때문에 고층빌딩 화재 때는 신속한 대피가 필수다. 하지만 국내 빌딩들 내부 계단은 중앙 쪽에 너무 조밀하게 붙어 있어 피난자들을 좁은 공간에서 엉키게 하는 점이 문제다. 국내 빌딩들의 계단 폭 자체도 좁아 화재가 발생하면 피난자들이 대피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경북대 연구팀이 대구의 30층 높이 공동주택 입주자 436명을 대상으로 벌인 대피 시뮬레이션(모의실험) 연구에서, 계단 폭이 1.2m였을 때는 피난 소요시간이 15분49초였지만, 폭이 1.6m였을 때는 12분39초가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대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계단 폭을 적절하게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경원대의 '초고층 건축물 화재시 방재·피난계획' 연구에서는 '화재가 났을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국가는 고층빌딩에서 화재가 나면 엘리베이터를 절대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당시 아주 건강한 사람이 95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데 1시간이 걸렸다는 보고도 있어, 초고층빌딩에서는 여러 보완책을 세워서라도 엘리베이터를 활용해 피난하는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 오피스텔 화재' 38층 펜트하우스 올라가보니]

 녹아내린 싱크대… 온통 형체없는 잿더미뿐

천장 구조물·전깃줄 너덜너덜 매캐한 냄새 숨쉬기 힘들 정도
"퍽 하고 불꽃 났다" 진술 확보… 경찰 '전기 결함 화재' 추정
오늘 국과수 참여 정밀 감식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우신골든스위트 동관 38층 펜트하우스. 지난 1일 화재 당시 가장 늦게까지, 그리고 제일 많이 불탄 곳이다. 화재로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간 펜트하우스 앞 복도는 코와 목이 따가워 호흡을 하기 곤란할 정도였다. 입구 문은 불에 온통 그을렸고, 윗부분이 휘어져 있었다.

집 입구에서부터 회색 재가 수북이 쌓여 있어 걸을 때마다 푹신한 느낌이 들었다. 고열을 견디다 못해 터져 버린 유리창 너머로 해운대 백사장과 동백섬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 안 천장에는 전깃줄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고, 거실로 추정되는 곳의 천장에서는 길이 1~2m 정도 되는 철제 구조물이 내려앉아 있었다.

주방의 싱크대는 녹아내렸고, 콘크리트 기둥과 철근들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창틀도 대부분 휘어지거나 심지어 끊어진 곳도 있었다. 바닥엔 도자기 조각 같은 것이 널려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물건의 잔해들이 대부분이었다. 매캐한 냄새가 가득한 계단 곳곳에서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재를 쓸어내고 바닥의 그을음을 손으로 닦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우신골든스위트 동관 38층 펜트하우스가 화재로 콘크리트 기둥과 철골만 앙상하게 남은 채 잿더미로 변한 모습. 깨진 창문 너머로 해운대 해수욕장(왼쪽)과 동백섬이 보인다. /권경훈 기자 werther@chosun.com
◆전기적 결함이 발화원인 추정

해운대경찰서 수사본부는 3일 "'전기 결함'이 화재 원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합동 정밀감식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 앞서 "최초 발화지점인 4층 재활용품 집하장 안 환경미화원 탈의실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과 연기가 났다" "탈의실에 각종 전기배선이 꽂혀 있었다" 등의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또 경찰·소방본부·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2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가진 재활용품 집하장 현장감식을 통해 선풍기 2대, 진공청소기 2대, 바닥청소기 등 전기제품 19점을 증거물로 수거해 정밀분석 중이다. 경찰은 4일 중
검찰과 소방본부, 국과수 등 전문가가 참여하는 합동 정밀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와 함께 최초 발화 지점이 배관실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공간이었는데 재활용품 집하장과 미화원 탈의실로 사용한 것에 대해 건축법과 안전관리기준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화재 당시 건물관리실에서 대피 안내방송을 하지 않고 화재경보기도 울리지 않은 이유, 화재 발생 시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지 않은 점 등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해운대경찰서 노상환 형사과장은 "화재 당시 5층 이상부터는 섭씨 70도 이상이 된 곳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고, 방화벽도 정상 작동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러나 삽시간에 불길을 확산시킨 주원인인 외벽 마감재의 적법성 여부와 소방 점검의 적정 여부에 대해선 수사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피해를 입은 가구는 전소 3가구, 반소 3가구, 부분소 114가구 등 120가구로 집계됐다. 전소는 집 전체에서 불에 탄 범위가 70% 이상, 반소는 30~70%, 부분소는 30% 미만을 뜻한다. 전소 또는 반소된 가구는 대부분 37~38층에 있었다.

소방서 관계자는 "불길이 인화성 높은 외장재로 이뤄진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고 최상층의 피해가 큰 것은 바람을 타고 위로 모인 화재 열기에다 건물 꼭대기 부분에서 부는 강한 바람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건물 옥상에 있던 '우신골든스위트' 간판과 전망대 등이 타면서 상층부의 불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졸지에 이재민 된 화재 피해자

이번 화재로 졸지에 이재민 신세가 된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인근 호텔과 모텔 또는 친인척과 지인들의 집에 머무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불이 완전 진화된 지난 1일 밤부터 경찰과 소방서, 건물관리실의 확인을 거쳐 집안에서 귀중품과 세면도구, 옷가지 등 필수 소지품만 챙겨서 나온 상태다. 35층에 사는 한 여성 입주자는 "당장 입을 옷이 없어 이웃에서 얻어 입고 나왔다"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해운대구청과 해운대소방서 등은 "통신케이블, 가스 배관, 상하수도 시설 등이 상당 부분 불에 타 훼손 또는 소실된 상태여서 이를 교체 또는 복구해 전기와 수도 등을 정상공급하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