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산방은 그 어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지도에 등록된 공식적인 도로가 없는 곳으로 그저 조붓한 농로만이 닿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누군가 나의 산방을 찾아오기 위해 위치를 물으면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아랫마을 경로당으로 찾아오게 합니다. 경로당까지 찾아오면 이후 그 위쪽에 서있는 큰 느티나무 갈림길에 다다르라고 일러줍니다. 그곳에서 농로를 따라 계속 박혀있는 전봇대를 주시하며 마지막 전봇대까지 오면 된다고 안내합니다. 이렇게 나의 산방은 경로당과 큰 느티나무, 그리고 전봇대가 이정표인 셈입니다.
어제 나는 나의 오두막을 일러줄 수 있는 그 이정표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 마지막 갈래 길에 서있던 아주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에서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아침부터 그 갈래 길에서는 포크레인과 엔진 톱이 붕붕대고 윙윙댔습니다. 굵은 나뭇가지들을 잘라내고 시멘트 포장을 부숴 뿌리의 분을 떠놓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마침내 객지에 다녀와보니 그 느티나무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마을 형님께 알아보니 마을의 누군가가 그 느티나무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마침 틈틈이 함께 숲 생태를 공부하는 마을 형수님으로부터 핸드폰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선생님, 돈이라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마을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온 거목을 잃게 되어 너무 안타깝습니다.” 마음씨 고운 형수님의 슬픔이 내가 느끼는 슬픔과 만나 증폭되었습니다. 들어보니 마을의 또 다른 어느 형님은 나무의 반출작업을 하던 업체를 관청에 고발했다고 했습니다. 개인 소유의 땅 경계에 있는 나무여서 나무 반출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지만, 도로 포장을 임의로 파손하는 행위를 중지시켜 나무 반출을 막아보려는 마음이 그 형님 속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100년은 족히 살았을 그 느티나무의 삶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땅 주인은 여러 차례 그 나무를 죽이려 시도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나무가 커갈수록 그림자도 커져 밭 농사를 망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 마치 연리목처럼 맞닿아 있던 아름드리 줄기 하나를 잃은 채 서 있던 나무였습니다. 하지만 그 커다란 상실에도 느티나무는 고즈넉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느티나무는 어디론가 영원히 떠났습니다. 그곳에는 다만 부숴진 길과 움푹 파여진 웅장했던 뿌리의 빈 자리만 쓸쓸히 남아 있습니다. 마을의 어느 형님은 그것을 팔아 얼마의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그 나무를 반출해 간 어느 조경업자는 그 형님이 거머쥔 돈의 수십 배의 돈을 챙겼을 것이고, 그 나무를 사서 건물 앞의 어딘가에 조경을 한 누군가는 자연을 품은 건물을 지었다고 만족해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느티나무 한 그루는 우리 사회에 생산유발효과를 일으킨 재화로 변했을 것입니다. 길을 일러주는 이정표의 하나로 서 있던 별 쓸모 없던 느티나무 한 그루가 거창하게는 우리나라의 GDP 상승에 기여한 셈인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나무가 뽑혀져 실려나가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오래된 나무가 자신에게 그리고 마을에 어떤 존재로 심겨져 있었던 것인지를. 그 오래된 느티나무는 그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유년의 놀이터였습니다.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그 나무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아래서 병정놀이를 했을 테고, 다른 누군가는 그 아래서 몰래 연애를 했을 것입니다. 또한 한 여름 새참을 먹기에 좋은 장소였을 테고 노인들의 야외 사랑방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나무가 커다란 크레인의 도움으로 트럭에 실려 어렵게 마을을 떠나던 그 순간, 자신들의 오래된 이야기도 함께 팔려 떠났다는 사실을.
나 역시 돈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절대 팔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며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는 절대 팔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죠?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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