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보직 과학자들 '강등'…연구에 집중해라" 박준택 기초연 원장…"연구 않는 사람은 과학자 아니다" "재미있게 연구해야 노벨상 탈 수 있어"…정부 간섭 'NO' | ||||
박준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이 생각하는 과학기술자에 대한 정의다. 연구하지 않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 2년째 기초연 수장직을 수행하면서 박 원장은 '과학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왔다. 생각해 볼수록 결과가 뚜렷해 진다.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최근 박 원장이 생각한대로 조직을 운영한 결과 연구소 분위기가 '부정' 보다는 '긍정'과 '연구자의 행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연구현장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기초연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이웃 과학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박 원장을 만나봤다. 박 원장은 기자를 만나 우리나라 과학기술자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이야기부터 꺼내놓았다. 정부의 예산을 받아 연구를 진행해야만 하는 과학자들에게 연구만 하는 삶이란 꿈과 같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박 원장은 "많은 과학자들이 자기가 택한 길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과학자의 길을 택했던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력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국가가 지금보다 더 도약하려면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정책이 바로 서야 한다. 과학자들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고, 연구만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국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우수한 과학자들은 연구만"…행정업무 스트레스 'NO' 지난 2008년 5월 기초연 원장으로 임명된 박 원장은 1년은 탐색 기간, 그 다음 1년은 본격 업무 추진 기간으로 삼았다. 원장이 되기 전 자그마치 25년 동안 KAIST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던 그가 출연연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죠. 그래서 그런지 기초연에 와서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간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첫 1년 동안에는 기초연에 대한 상황 파악을 했죠. 그 다음 1년은 본격적으로 구상한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썼고요." 박 원장이 가장 야심차게 추진한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조직 개편이다. 행정 업무에 찌든 과학자의 삶을 연구만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신념이 있었다. 박 원장은 "기초연에 와서 보니 우수한 연구자들이 대부분 보직을 맡고 있었다"며 "우수한 과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해야 하는데, 행정 노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보직 자리에 있던 과학자들은 연구를 해야 할 시간에 매일 회의를 주재해야 하고, 발표도 나서서 해야했다. 박 원장은 "기초연 뿐만 아니라 모든 출연연의 공통적인 문제"라며 "연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보직을 맡고 있다.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출세를 못한 것처럼 되버렸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가 단행한 조직 개편의 모토는 '행정 업무에 관심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은 행정을,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연구 현장으로 돌아가자'다. 박 원장이 내부 의견 수렴을 위해 택한 방법은 '대화'다. 그는 연구원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열린 대화에 돌입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보직을 맡고 있던 부장들과 이야기를 했죠. 내 생각이 이렇다라고 말을 했더니 그들 역시 행정 업무 때문에 연구에 지장이 많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죠. '부장을 하는 게 좋겠느냐, 아니면 연구원으로 연구에 전념을 하는 게 좋겠느냐'고. 그랬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구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죠." 조직의 슬림화로 인해 팀내 불화도 사라졌다. 기존 조직 구성에서는 부서 내 팀 간 벽이 높아 대화가 잘 안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 역시 조직 개편으로 인해 해결됐다. 박 원장이 시행한 조직 개편으로 인해 팀이 없어지고, 부 체제로 전환되면서, 팀장 중심으로 진행됐던 조직이 연구 책임자 중심으로 시스템화 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물꼬가 터졌다. 박 원장은 "그동안 해왔던 관행이기 때문에 반발도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체로 요즘 연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팀내 불화도 없고, 서로 연구를 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서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 "노벨상? 먼저 실패해도 재미있게 다시 연구할 수 있는 문화 필요"
박 원장은 "노벨상 탄 사람들을 살펴보면 평생을 같은 일을 심도있게 연구한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면 일단 연구비가 기본으로 뒷받침돼 있다. 우리나라도 이쪽 저쪽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는 예산 정책이 받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이공계 인력 양성이다. 현재 과학자의 처우를 보고 이공계 학생들이 과학기술계로 오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과학자가 존경받고, 정책이나 사회가 변화할 때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되면 노벨상을 타겠다는 꿈을 갖는 아이들도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현 출연연의 문제는? 박 원장이 꼽은 출연연의 문제는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 박정희 대통령이 연구단지를 만들 때 출연연이라는 곳은 굉장히 영광스런 직업이었다"며 "대학과 달리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 똑똑한 사람이 많이 모여 들었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출연연은 예전의 영광에서 탈피해 현재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출연연만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연구원들의 사기를 진작해주고,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인 과학기술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출연연을 좌지우지하는 정부의 태도도 중요하다. 박 원장은 "모방형 연구 식에는 출연연이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모방형이 아닌 창조형 연구 형태로 과학기술이 진화되고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정부의 대응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선진국과 대등하게, 선도형 연구개발 쪽으로 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예산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정부에서 볼 때 그렇게 하면 수지에 맞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도 이제는 예산이 많이 드는 연구, 시간이 많이 드는 연구로 바뀌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막연한 중복연구 우려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박 원장이 예로 든 곳은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 "독일 막스플랑크에는 80개의 연구소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중복 연구가 허용되고 있죠. 중복 연구에 대한 생각이 저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수많은 연구팀들 중 한 팀만 성공하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모든 연구원들에게 자리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죠. 하나의 연구소가 하나의 연구만 한다고 했을 때 만약 실패하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도 중복연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책도 절실하다고 박 원장은 역설했다. 연구원들이 행복한 게 결국은 효율적인 경영으로 이뤄진다는 생각을 갖고 연구소 경영에 임하고 있다. 그는 "안정적인 연구 환경과 처우개선, 연금 혜택 등 정부에서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며 "그렇게 한 뒤에 출연연의 잘못을 꼬집고 해야지 이야기가 된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평소 꼼꼼한 성격 탓에 '디테일 박'으로 통하는 박 원장. 그는 "외국으로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유심히 봤던 것은 예쁘게 꾸며져 있는 연구원들의 전경이었다"며 "과학자들의 경우 정신적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연구원 미화를 통해 과학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디테일 박을 만나 많이 힘들었겠지만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이들이 편히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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