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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봉하는 벌을 받아 앉혀 놓은 몇 개의 벌통에서 벌들이 떠나버렸습니다. 앉혀 놓았던 벌 통이 빈 벌통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한 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마당 한 켠에 심은 몇 포기의 상추 중에 개에게 밟힌 한 포기의 상추가 시들어도 서운한 마음이 큰데, 어렵게 받아놓은 벌들이 집단으로 집을 떠나는 장면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섭섭함은 그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말없이 그들이 떠나고 난 빈 벌통을 열어봅니다. 무엇이 불편했을까? 곧 비가 온다는데, 저렇게 떠나면 집과 먹이를 구하느라 주리는 시간을 겪어야 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저들에게 이곳을 버려 산 속의 험난함을 택하게 했을까? 심하게 표현하면 마치 저들로부터 내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밀랍을 정성껏 녹이고 미리 발라 마련해 두었던 빈 벌통이었는데, 저들은 사흘 만에 가차없이 그 벌통을 버렸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빈 벌통을 살펴보았으나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보다 오랫동안 벌을 쳐오신 마을 어르신께 상황을 여쭈었습니다. 어르신은 나의 벌 통만 그런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며칠 간 마을의 벌통에서도 많은 도망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르신은 아마도 가뭄 탓일 거라 하셨습니다. 근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가뭄이 지속되면 벌들이 안정을 취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만 버림받은 것은 아니라지만 위안이 되질 않았습니다. 알고 싶었습니다. 저들이 떠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떠나간 네 통의 벌통 중에 두 통의 원인이 개미라고 추정하게 되었습니다. 떠난 두 개의 벌통 주변에 개미 집이 있었습니다. 분봉 벌의 벌통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접근을 막는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는데, 이것이 벌들의 이사를 결심하게 한 결정적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두 통의 벌이 떠난 원인은 어르신 말씀처럼 아마 가뭄 탓인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즈음의 가뭄은 산딸기 꽃이 지고 일시적으로 숲의 밀원이 부족한 상태일 때 오기 쉽습니다.
이미 집을 지어 자리를 잡은 벌들이야 저장해 놓은 꿀과 꽃가루를 먹으며 다른 꽃들의 개화를 기다리면 되지만, 딱 이틀 치의 먹이만을 머금고 분봉한 벌들은 밀원이 부족한 시간을 건널 방법이 마땅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틀간 주변 숲을 탐방해 본 뒤, 더 많은 밀원이 있는 지역으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테고, 그렇게 이 곳을 버렸을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숲에는 지금 한창 꽃을 피우는 아카시나무가 없습니다. 아마도 떠난 벌들은 이 가뭄의 시기를 건널 수 있는 아카시 꽃이 피어있는 숲으로 떠난 듯 합니다.
그렇게 이해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들이 지닌 본래의 특성을 따라 본래의 힘으로 살고자 떠난 것이라 이해하게 되자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종벌은 때로 먹이를 주고 특별히 온도를 관리해주며 사육하는 서양벌과 달리, 강한 야생성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로 살지만, 그들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 생명들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본래의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두려움도 주저함도 적은 법임을 나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만 떠난 그들이 본래의 힘으로 새로운 집을 짓고 잘 살 수 있기를 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