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위험 인지하고도 시정 조처 않은 ‘총체적 면피행정’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리튬 배터리공장 화재 참사의 책임은 안전관리에 소홀했던 배터리 회사에만 있지 않았다. 참사가 일어난 배경에는 사전에 작업장 내 위법사항과 사고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시정 조처에 나서지 않은 감독관청의 ‘면피 행정’도 자리잡고 있었다. 소방당국은 불이 난 건물의 내부 구조가 감독관청에 제출된 도면과 다른데도 이를 인지하지도 못했다.
27일 소방당국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화성소방서 남양119안전센터는 지난 3월 이번에 불이 난 아리셀 공장으로 ‘소방활동 자료조사’를 나갔다. 소방활동 자료조사는 소방청 훈령에 따라 화재의 예방과 진압, 인명구조 등 소방활동에 필요한 부분을 미리 점검하고 대응하기 위해 하는 조사다. 남양119안전센터는 이 공장 소방안전관리자와 위험물 안전관리자와 함께 현장을 둘러본 뒤, 아리셀 회사 건물 11개 동 가운데 지난 24일 불이 난 3동을 ‘다수 인명피해 발생우려지역’으로 지목하고 ‘급격한 연소로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며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해달라고 구두로 주문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소방활동 자료조사서’는 소방 내부 시스템에도 등록됐다.
하지만, 이 조사서는 정작 불이 났을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금속화재는 물, 폼, 할로겐 약제, 이산화탄소 소화기로는 끄지 못하는 성질을 갖고 있음을 알면서도, 소방당국은 마땅한 진압 장비나 소화재도 없이 출동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 빨리 출동하고도 내부에 있던 리튬 배터리가 ‘자연연소’될 때까지 불길이 주변 건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냉각작업’만 펼쳤다. 뒤늦게 다량의 모래가 화재 현장에 도착했으나, 진화 작업에는 사용되지 못했다. 경기도소방본부 관계자는 “순수 리튬 원료의 경우 수분과 접촉하면 폭발성을 갖지만, 배터리는 소량이 포함돼 가공된 제품이다. 베터리 완성품이 이미 모두 폭발 이후에는 공장화재로 이어져 물로 진압해야 한다”고 했다.
불이 난 3동의 경우 설계 도면과 실제 내부구조가 회사 쪽의 임의 변경으로 달라져 있었지만, 소방활동 기초조사 보고서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방당국은 화재 뒤 내부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확인하기 전까지 불이 난 3동 2층의 가벽 설치 상태가 애초 신고된 평면도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지난 24일 2층 평면도와 주검 발견 위치 등을 처음 공개할 당시에도 실제 내부 구조와 다른 건축 허가 당시의 도면을 활용했다.
불이 난 아리셀 공장은 소방시설법 상 안전관리대상 2급 위험시설로 분류돼 내부 소방시설을 ‘자체 점검’해 왔다. 하지만 소방당국이 2년에 1회 이상 하도록 규정한 소방활동 자료조사에는 업체의 ‘자체 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고 진화 작업을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시행한 조사임에도 그 결과를 내부에서 공유하거나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했다는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업체의 위험 관리가 취약했던 것 못잖게 예방·점검·진압 등 소방활동 과정 전반이 총체적 부실덩어리였던 셈이다.
소방당국은 ‘관련 규정 미흡’을 탓한다. 화성소방서 관계자는 “소방활동 자료조사는 그 목적 자체가 소방활동에 필요한 자료를 파악하는 것으로, 처벌하거나 시정 조처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또 리튬전지 완제품의 경우 위험물로 분류해 관리할 수 있는 규정 자체가 없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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