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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안전관리 업무 전담 법률, 시행 1년 만에 회귀 움직임… 도대체 왜?

Dr.risk 2023. 12. 12. 22:04

특ㆍ1급 대상물, 별도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근거 마련
국회서 소방 전담 업무 대상물 축소 법안 연이어 발의
특ㆍ1급 공동주택 중 세대수 적은 곳 경제적 부담 ↑
분야 관계자들 “소규모 공동주택 제외는 타당성 있어”
신중한 소방청… “대상물 조정 검토 필요성은 공감”

▲ 소방안전관리자가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 김태윤 기자


[FPN 박준호, 김태윤 기자] = 일정 규모 이상 건물에 소방안전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법안이 시행된 지 1년도 안 돼 국회에서 이를 다시 완화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은 화재 예방과 안전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화재예방법)’ 제정안을 지난해 12월부터 시행하면서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의무교육시간도 대폭 늘렸다. 건축물의 화재 발생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관리ㆍ감독하는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역량을 강화해 화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최근 국회 차원에서 소방안전관리자 업무 전담 대상물을 축소하는 내용의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해당 대상물에서 전기나 위험물, 고압가스 등 타 직군의 안전관리자가 소방안전관리자 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왜 이렇게 단기간에 과거로 회귀하는 법안이 추진된 걸까. <FPN/소방방재신문>이 내막을 들여다봤다.

 

65년 소방 역사와 함께한 소방안전관리자

소방안전관리자는 특정소방대상물 중 전문적인 안전관리가 요구되는 곳에서 화재 예방 등 소방안전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제도는 1958년 3월 11일 ‘소방법’ 제정 때부터 시행됐다. 해당 특정소방대상물 관계인은 자격증을 발급받은 사람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해야 한다.

 

현행법상 건축물은 층수와 높이, 규모 등에 따라 특급과 1ㆍ2ㆍ3급으로 구분한다. 특급은 50층 이상(지하층 제외)이거나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200m 이상인 아파트, 1급은 30층 이상(지하층 제외)이거나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20m 이상인 아파트, 2급은 옥내소화전설비 또는 스프링클러설비가 설치된 공동주택, 3급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 등으로 나누는 식이다.

 

소방안전관리자는 건축물 등급에 따라 특급과 1ㆍ2ㆍ3급 등 총 4개 등급으로 배치된다. 이들은 해당 건축물에서 ▲피난계획에 관한 사항과 소방계획서의 작성 및 시행 ▲자위소방대 및 초기대응체계의 구성ㆍ운영ㆍ교육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관리 ▲소방시설이나 그 밖의 소방관련시설의 관리 ▲소방훈련 및 교육 ▲화기취급 감독 ▲업무수행에 관한 기록ㆍ유지 ▲화재 발생 시 초기대응 ▲그 밖에 소방안전관리에 필요한 업무 등을 수행해야 한다.

 

특정 자격을 갖췄거나 소방 분야에 일정 기간 이상 경력이 있는 자, 한국소방안전원에서 시행하는 강습교육을 받고 시험에 합격한 자 등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1년 맞은 ‘겸직 제한’ㆍ‘업무 전담 대상물 지정’ 의무

건설 기술 발전으로 해마다 고층ㆍ복합건축물은 느는 추세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10년(’12~’22년)간 특급은 410에서 823개소, 1급은 8063에서 1만7499개소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입주자들의 편의성은 향상됐지만 피난 시간 증가와 인구 밀집 등으로 화재 시 인명ㆍ재산피해 위험은 커졌다.

 

이에 따라 소방안전관리자의 역할과 중요성이 대두됐고 지난해 12월 시행된 ‘화재예방법’엔 이들의 화재 예방, 초기대응 능력 등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특히 소방안전관리자의 전문성 확보와 업무 집중도 향상을 위한 개선조치가 포함됐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타 직군 안전관리자 자격으로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할 수 있던 걸 제한하는 내용의 ‘타 자격자 겸직 제한’이다.

 

이전엔 전기나 위험물, 고압가스 등 타 직군 안전관리자는 별도의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 없이도 소방안전관리자 업무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화재 시 초기대응 능력 부족 등 소방안전관리자 겸직으로 인한 전문성 결여 논란이 지속하자 소방청은 ‘화재예방법’에 다른 안전관리자 자격증이 있더라도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을 반드시 갖추도록 하는 조항을 명시했다.

 

다른 하나는 ‘소방안전관리 업무 전담 대상물’ 설정이다. 쉽게 말해 타 직군 안전관리자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보유했더라도 일정 규모 이상 대상물엔 소방안전관리 업무만 전담하는 인력을 두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소방청은 이 대상물을 특급과 1급 대상물로 규정했다. 특급과 1급은 건축물 규모가 크고 상주 인원이 많아 화재 시 대형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상대적으로 큰 대상물이다. 이곳에 다른 안전관리자가 소방안전관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면 업무과다 등으로 소방시설 유지관리에 소홀할 수 있어 개정했다는 게 소방청 설명이다.

 

실례로 2021년 소방관 1명이 순직하고 수천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경기도 이천 쿠팡물류센터 화재 당시 소방안전관리 자격증이 없는 전기안전관리자가 소방안전관리자 업무를 수행하면서 문제가 됐다.

 

▲ 2021년 발생한 경기도 이천 쿠팡물류센터 화재  © 최누리 기자

 

“세대 수 적은 곳, 경제적 부담 많아”… 국회서 입법 추진

이처럼 소방청은 화재 예방과 인명ㆍ재산피해 방지를 위해 소방안전관리자 관련 법안을 대폭 손질했다. 하지만 시행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소방안전관리 업무 전담 대상물 중 일부를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울산 중구)은 지난 9월 15일 소방안전관리 업무 전담 대상에 1급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을 제외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정동만 의원(부산 기장)도 건축물 규모나 수용인원,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비용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소방안전관리업무 전담 대상물을 정해야 한다는 개정안을 10월 6일 국회에 제출했다. 두 의원 모두 ‘국민의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들고 있다.

 

통상 공동주택은 입주민 관리비로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소방안전관리자를 별도로 선임하면 그만큼 세대별 지출이 커진다. 100세대 공동주택의 경우 소방안전관리자 월급을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더라도 매달 최소 2만원가량의 관리비가 증가한다는 얘기가 된다. 세대 수가 많은 곳은 그나마 덜하지만 적은 곳은 세대원의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게 두 의원실 설명이다.

 

박성민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통 특급이나 1급 대상물은 입주자가 많을 거로 생각하지만 지방엔 1급 대상물이면서 세대수는 적은 곳이 많다”며 “소방안전관리자 인건비는 입주자 관리비로 충당하기에 세대수가 적은 곳은 경제적인 부담이 큰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타 안전관리자가 소방에 관한 교육을 추가로 받는 등 미비점을 보완할만한 방법이 많았는데 소방청이 무조건 전담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민원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동만 의원실 관계자도 “추후 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하위법령에서 수용인원은 몇 명으로 할 건지, 비용을 얼마로 할 건지 등을 정하게 되지 않겠나”라며 “공동주택 입주자대표회 등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목소리가 많이 나와 법안 발의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방안전관리 업무 전담 의무 삭제? 1급 전체는 안 돼”

이 같은 움직임에 소방 분야 종사자들은 “화재로부터 국민안전이라는 입법 취지가 퇴색됐다”고 반발하면서도 “세대수가 적은 공동주택을 제외하는 건 합리성이 있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35년 이상 현장 소방안전관리자로 재직했던 이명상 전 한국소방기술인협회 부회장은 “건축물의 대형ㆍ고층화로 소방시설과 안전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어 더욱 선진화된 시스템을 구축해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1급 대상물엔 대규모 물류센터와 지식산업센터 등이 많이 포함되는데 1급 전부를 제외하는 법안은 터무니없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어 “하지만 1급 대상물이면서 세대수가 적은 공동주택은 소방안전관리자를 추가로 선임해야 하기에 주민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곳은 단서조항을 마련해 제외하면 되지 1급 전체를 제외하는 건 국민안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10월 공식 출범한 한국소방안전관리자협회의 성용판 회장 역시 “1급 대상물은 상당히 큰 규모의 대상물로 막대한 인명ㆍ재산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소방안전관리자가 전담하는 게 상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공동주택 중에서도 세대수가 적은 곳은 물류창고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업무가 간단할 수 있어 전담 대상에서 배제하는 건 논의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단순 비용이 아닌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량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공동주택은 공용시설 중심으로 관리가 이뤄지기에 다른 사업장보단 상대적으로 업무가 적을 수 있다”며 “이들의 업무량을 면밀하게 살펴 겸임해도 크게 문제가 없는지, 아니면 비용이 들더라도 화재 안전을 위해선 전담을 반드시 해야 하는지 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입주자들의 경제적 부담이라는 단순 논리로 회귀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소방청은 관련 법안과 논란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실제 과도한 규제로 작용한다면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해당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지 않아 아직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여러 사항을 고려해 업무 전담 대상물을 조정하는 건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