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주재원이 되어 일본으로 떠나는 동료 연구원을 위해 송별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거창하게 송별회라고 말은 했지만 주인공을 포함해서 세 명이 전부인 조촐한 술자리입니다. 삼 년 정도 그곳에 머무르게 될 거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작은 떨림과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던 우리의 레퍼토리는 자연스레 요즘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세 명 모두 아직 자신의 첫 책을 쓰지 못한 수료 연구원들이기에 단연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우리 셋은 마음을 다해 힘든 연구원 1년 차를 무사히 넘겼으면서도 왜 여태 자신의 책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바쁜 일상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일본으로 떠나게 될 ‘그’는 지난 3년 동안 정신 없이 바빴습니다. 연구원 활동도 그렇지만, 회사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고 거기에 더해 다양한 실험을 하느라 정말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가 그렇게도 쓰고 싶어하던 첫 책은 아직 그 윤곽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함께 자리한 또 한 명의 상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그녀’의 회사 생활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쁩니다. 전화통화라도 할라치면 ‘나중에’를 연발하기 일쑤입니다. 잦은 야근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출근입니다. 정시에 출근하기 위해서 그녀는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합니다. 회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제 사정도 딱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야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두 아이의 아빠에게 개인 시간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사치이지요. 저녁 약속은 가급적 피하고 집으로 달려가지만 아이와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자정을 넘기곤 합니다. 서둘러 잠자리에 들어보지만 새벽에 일어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실천과 관련하여 늘 범하는 중대한 시행착오는 일상의 잡다한 생활을 정리하지 않은 채, 새로운 시간 투자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훈련을 시작하려면 그 동안의 생활들을 재구성해야 한다. 루빈 스타인*과 마찬가지로, 밤마다 친구들과 놀고, 여인에 탐닉하고, 풍성한 음식에 빠져들면 천재에게도 기회는 없는 것이다. - 구본형의 필살기 중에서
일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그는 상황의 힘을 빌어 다양한 활동 중에서 많은 부분을 정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출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거나 직접 차를 몰고 일찍 출근해서 회사 근처의 카페를 이용하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저녁 시간을 좀더 밀도 있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저녁시간은 항상 가족들을 위해 쓴다고 큰 소리쳤지만 정작 컴퓨터와 TV 사이를 오가며 많은 시간이 부스러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급한 업무가 아니라면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고 TV도 켜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시간에 아이와 찐하게 놀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앞당기기로 한 것이지요.
물론 이런 계획들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상에 매몰된 우리가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긴다 해도 계속해서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우리의 책이 한 장씩 그 모습을 갖춰가길 기대해봅니다.
여러분은 소중한 꿈을 위해 무엇을 정리하시겠습니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ur Rubinstein, 1887.1.28~1982.12.20] : 천재적 재능을 믿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평생 동안 연습에 몰두한 20세기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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