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및 재해

[엔지니어 칼럼] 화재위험평가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Dr.risk 2024. 1. 11. 21:21
 
▲ 이승호 한국소방기술사회 재무이사  © 소방방재신문

건축물에 설치하는 소방시설은 화재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소방시설의 설치종류, 범위 등은 해당 건축물의 용도와 규모에 따라 관련 법에서 정하고 있다.

 

이런 법규 중심의 소방시설 적용은 행정적으로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 화재위험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별표2에선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을 30가지 용도로 구분한다. 그러나 30가지로 화재위험도를 구분하는 건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같은 공장의 용도지만 생산 제품 종류에 따라 그 위험도는 차이가 있다. 같은 창고 용도라도 물품의 종류나 적치 방법 등에 따라 화재위험도는 크게 다를 거다.

 

빠른 변화에 따른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업종이 지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30가지로 고정된 용도 구분은 새롭게 생겨나는 업종의 위험을 반영해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생겨나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탈출카페는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가연물이 많고 피난 장애물이 존재한다. 화재 시 외부에서 열어주지 않는 한 밀폐된 실에 고립되는 문제를 갖고 있다. 기존 30가지 용도에 해당하지 않고 다중이용업소로도 구분하기 어려워 화재안전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법규 중심의 소방시설 적용은 소방산업 발전에도 저해된다.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 더 좋은 소방시스템을 적용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러나 법규 중심의 ‘소방법’ 적용은 ‘소방법’에서 제시하는 소방시설만 설치하면 된다는 생각을 뿌리내리게 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방법’에서 정하는 소방시설 외엔 아무리 좋은 소방시스템이라도 적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고층 건축물엔 성능위주설계라는 제도하에 실제 화재위험성을 찾고 적응성 있는 소방시설을 설치토록 하고 있다. 또 터널과 지하구 등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용도에 대해선 별도의 화재안전성능기준이 마련돼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창고시설과 공동주택의 화재안전성능기준 목적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소규모도 아니고 고층 건축물도 아닌 중간 건축물은 어떨까? 아무리 화재위험도가 높더라도 사용자는 그 화재위험도를 알 수 없다. 화재에 위험한 원인을 알아야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울 수 있다.

 

화재 위험요소에 대한 즉각적인 개선은 어렵더라도 일단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화재 안전 확보를 위해 화재위험평가가 대중화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