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감식평가

잊을만하면 또… 인천 호텔 휘감은 불, 가연성 건축자재가 ‘장작’ 역할했다

Dr.risk 2023. 12. 26. 21:01

한밤중 불로 투숙객 등 54명 부상, 중국인 여성은 생명 위독 상태
호텔 1층 필로티 천장서 시작된 불, 삽시간에 옆 주차타워로 번져
불길 모은 가연성 건축자재, 차량ㆍ뻥 뚫린 방화구획 만나 ‘확산’
화재 시작 제천ㆍ확산 요인은 부산 주차타워… 대형 화재 ‘종합판’
전문가들 “주차타워 내부 스프링클러, 화재 시 제 역할 못 했을 것”

▲ 지난 17일 오후 9시 1분께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의 그랜드팰리스 호텔 주차타워에서 불이 나자 소방대원이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제공

 

[FPN 최영, 박준호 기자] = 54명이 다친 인천 그랜드팰리스 호텔 불이 주차타워 꼭대기까지 단시간에 확산한 이유로 ‘가연성 건축자재’가 지목되고 있다.

 

화재 피해 장소와 불길의 확대 양상, 빠르게 번진 원인 등 모든 게 올 초 발생한 부산 서면 오피스텔 주차타워 화재와 똑같다. 유사 사고가 언제든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당시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또 이번 화재의 최초 발화지가 1층 필로티 천장 속으로 특정되면서 2017년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닮은 ‘대형 화재사고 사례의 종합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오후 9시 1분께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의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호텔 1층 필로티 천장에서 불꽃이 나온다는 신고를 접수한 소방은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진압을 시도했다. 불길이 강풍을 타고 맞닿은 주차타워 건물 외벽으로 번지자 9시 18분께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소방대원 319명 등 인력 404명, 장비 129대가 투입됐고 불은 발생 1시간 30분 만인 오후 10시 31분께 완전히 꺼졌다.

 

이 불로 투숙객 등 54명이 연기를 흡입하거나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부상자 중엔 외국인 8명(필리핀 2, 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태국ㆍ미얀마ㆍ베트남 각 1명)도 포함된 거로 전해졌다.

 

특히 전신에 2도 화상을 입은 30대 중국인 여성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또 다른 중상자는 불길과 연기를 피해 바로 옆 건물 옥상으로 추락한 20대 한국인 남성이다.

 

발목과 허리통증을 호소한 경상자 13명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송자 중 39명은 진료 후 귀가했다. 이 불로 주차타워가 전소하고 주차된 차량 20여 대가 소실됐다. 또 호텔 건물 외벽과 필로티 주차장이 불에 탔다.

 

1층 필로티 천장서 시작된 불… 제천과 꼭 닮았다

그랜드팰리스 호텔 화재는 후문 1층 필로티 천장 내부에서 시작된 거로 파악된다. 인근 건물 CCTV엔 이날 오후 9시께 천장에서 갑자기 ‘번쩍’하고 불꽃이 발생하는 모습이 담겼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도 지난 19일 “합동 감식 결과 불은 호텔 후문 1층 필로티 천장에서 전기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그랜드팰리스 호텔 필로티 천장 마감재는 SMC(Sheet Molding Compound)가 쓰였다. SMC는 열경화성 수지로 만들어진 일종의 플라스틱 천장 마감재다. 습기와 오염, 화학물질에 강하고 부식과 변형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단열 효과도 뛰어나다. 하지만 플라스틱 특성상 화재에 취약하다. 이 SMC는 천장에서 시작된 불이 빠르게 확산한 이유로 꼽힌다.

 

6년 전 29명이 사망한 제천스포츠센터 화재와 유사하다. 제천스포츠센터도 지상 1층 필로티 주차장 천장에서 최초 발화했다. 천장 내부에 설치된 전기 시설에서 시작된 불은 천장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단열재와 SMC,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구성된 외벽을 타고 급격히 확산했다.

 

소방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그랜드팰리스 호텔 필로티 천장 내부와 외벽엔 XPS(Extruded Polystyrene Foam) 단열재가 시공됐다.

 

일명 ‘핑크보드’로 불리는 이 단열재는 폴리스티렌 수지에 탄화수소 등의 발포제를 첨가해 압출성형한 제품이다. 쉽게 말해 석유화학 원료를 사용하는 유기 단열재로 시공이 간편하고 단열성능이 뛰어나지만 불이 쉽게 붙는다는 단점이 있다.

 

▲ 호텔 외벽에 설치된 XPS 단열재. 화재로 탈락해 바닥에 널브러진 XPS 단열재는 열기로 심하게 용융돼 있었다.  © FPN

 

XPS는 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친 2019년 천안 라마다앙코르 호텔과 94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2021년 남양주 부영애시앙 지하주차장 천장에 쓰였다.

 

천장 속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시작된 불이 SMC와 XPS라는 좋은 먹잇감을 만나 1차로 화세를 키웠던 셈이다.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로 덮인 주차타워, 불길로 덮였다

▲ 주차타워에 시공된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이 화재로 모두 떨어져 나갔고 엿가락처럼 휘어 있다.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은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대형 화재때마다 확산 주범으로 거론됐다.  © FPN


그랜드팰리스 화재가 2차로 커진 배경으로는 맞닿은 주차타워의 건축 외장재가 지목된다. 그랜드팰리스 호텔은 지하 3층, 지상 18층, 연면적 8410.24㎡ 규모다. 총 객실은 203개 실이고 지하층은 기계실ㆍ주차장, 2층부터 17층은 호텔, 18층은 옥상정원으로 사용했다.

 

그랜드팰리스 호텔은 지하층 외에 높이 48m, 최대 주차대수 76대 규모의 기계식 주차타워를 투숙객 주차공간으로 활용했다.

 

주차타워와 호텔은 마치 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호텔과는 콘크리트 벽체로 분리된 구조를 띤다. 주차타워 두 개의 벽면은 호텔 벽체와 맞닿아 있고 나머지 두 면 전체는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로 마감했다. 화재 당시 불길은 이 두 면의 주차타워 벽면을 타고 48m 꼭대기까지 삽시간에 번졌다. 짧은 시간에 불길이 확산한 이유는 바로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 때문이었다.

 

알루미늄 복합패널은 일반적으로 약 0.5㎜의 얇은 알루미늄 코일(coil) 두 장 사이에 3㎜ 정도의 심재를 넣고 접착제로 붙인 뒤 불소수지 도료를 이용해 코팅 마감 처리한 샌드위치 구조의 형상을 가진다.

 

가벼우면서 모양과 색상 등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고 단열과 흡음성 등이 뛰어나 고층 건축물 등 많은 곳에 사용된다.

 

하지만 불이 난 그랜드팰리스 주차타워 외벽에 쓰인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은 일반적인 모양과는 달랐다. 알루미늄 패널 내부에 어떤 심재가 쓰였는지, 벽 사이 단열재는 무엇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 인천 그랜드팰리스 주차타워 외장재로 쓰인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 안쪽에 특정할 수 없는 심재가 부착돼 있다. 오른쪽 사진은 불에 부풀어 오른 모습.  © FPN

 

취재 과정에서 관련 기술을 취급하는 기업들과 단체, 기관 등 여러 곳에 알루미늄 복합패널의 탄화 형상 등을 보여주며 문의했지만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확산 양상과 불에 탄 패널을 볼 때 가연성 심재가 사용된 건 분명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소방은 주차타워에 주차된 차량과 뻥 뚫린 방화구획도 불을 키운 요인으로 보고 있다.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을 만나 확산한 불이 가죽시트와 타이어, 휘발유 등 화재하중이 높은 차량을 만나 더욱 덩치를 키웠고 48m 높이의 주차타워가 하나의 큰 불길 통로가 돼 천장까지 빠르게 번졌다는 거다. 이번 화재가 3차로까지 확산한 이유다.

 

박인식 공단소방서 재난대응과장은 지난 17일 현장브리핑에서 “기계식 주차장은 통로로 연결돼 있다”며 “차량이 연소하면서 상승기류를 타고 불이 신속히 퍼졌다”고 설명했다.

 

법규 강화 전 사용승인 받아 법망 빠져나가

▲ (왼쪽)2020년 10월 울산 삼환아르누보와 (오른쪽)지난 1월 부산 서면 오피스텔 주차타워 화재. 모두 불길이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 FPN

 

불길이 가연성 건축자재를 타고 건물 전체를 휘감은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2020년 10월 울산 삼환아르누보는 화염이 강풍을 타고 지상 33층까지 번졌고 올 1월 발생한 부산 서면 오피스텔 주차타워도 불이 단기간에 꼭대기까지 집어삼켰다. 두 건물의 화재 확산 요인 역시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이었다.

 

정부는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2012년 3월부터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에 가연성 외장재 사용을 금지했다.

 

5명이 사망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 이후인 2015년 9월부터 6층 이상, 제천스포츠센터 참사를 계기로 2019년 11월부터 3층 이상 또는 1층 필로티 주차장에 준불연 이상 외장재 사용을 의무화했다. 그랜드팰리스 호텔은 2015년 9월 1일 사용승인을 받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2004년 준공된 부산 오피스텔 주차타워 역시 법망을 모두 빠져나갔다.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불분명하지만… “제 역할 못 했을 것” 단언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화재로 완전히 전소한 주차타워엔 스프링클러설비가 설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평상시 물이 배관에 차 있는 습식 스프링클러가 아닌 화재를 감지하면 배관에 물을 채운 뒤 살수하는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설비’였다.

 

해당 설비가 화재 당시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화재수신기 이력 등을 회수한 소방과 경찰 등은 해당 로그 기록을 분석 중이다.

 

그랜드팰리스 주차타워는 바닥면적 48.88㎡ 크기로 호텔 건물 높이만큼 솟아있는 구조다. 총 76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다. 여기엔 양 측면 차량 주차판 벽면 쪽으로 ‘측벽형’ 스프링클러 헤드가 각각 두 개씩 구축됐다. 정확한 수량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총 주차대수를 감안할 때 150개가량의 스프링클러 헤드가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다 해도 제 역할을 할 순 없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주차타워 바깥 벽면을 타고 확산한 화재 특성상 내부 방호를 위해 설치된 스프링클러로는 확산을 저지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 주차타워 내부에 설치된 측벽형 스프링클러헤드. 총 주차대수를 감안할 때 150개가량의 스프링클러 헤드가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이 주차타워 바깥 벽면을 타고 확산한 점, 수직으로 빠르게 상승한 특성을 볼 때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더라도 화재를 진압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FPN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주차타워에 설치되는 측벽형 스프링클러는 주차면을 커버할 수 있도록 설치된다”며 “하지만 당시 건물 외벽 면이 연소하면서 수직으로 빠르게 상승한 특성을 볼 때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더라도 화재를 진압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주차타워에 주차된 차량의 화재하중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스프링클러설비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차 등 특수 에너지를 사용하는 차량이 증가함에 따라 주차타워 소방시설의 실효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김성한 소방기술사는 “기계식 주차장에 설치되는 스프링클러설비가 측벽형 헤드로 설치되면서 벽면과의 이격이 발생하는 것도 소화 성능에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소화설비와 화재감지 시스템 등 전반적인 소방시설에 대해 현실성을 고려한 대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