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중국 진출 기업이 동상 세워 히트 친 비결은?

Dr.risk 2011. 12. 22. 14:09

중국 진출 기업이 동상 세워 히트 친 비결은?

[휴넷MBA와 함께하는 경영 뉴트렌드]
21세기 첨단시대 기업경영에서 인문학 소양이 핵심으로 부각
손·발 쓰는 일은 자동화 기계가 반복적 사무 노동은 컴퓨터가…
남은 일은 인문학과 관련된 창조적인 일과 인간관계 기능
경영자 500명 설문조사 결과, 98%가 "인문학이 경영에 도움"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고경영자(CEO)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경영자 98%가 '인문학적 소양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조사대상의 80%는 "채용 시에도 인문학 소양이 풍부한 인재들을 우선 채용하겠다"고도 했다.

애플의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는 지난 1월 아이패드2 발표회에서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동안 생산성이나 조직 경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인문학이 21세기 첨단의 시대에 기업 경영의 구세주라도 된 양 갑자기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1세기 기업이 원하는 인재, 인문학에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노동의 성격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후 200여년이 지난 지금 생산 현장에서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손과 발로 힘을 쓰던 일들은 자동화 기계가 빼앗아간 지 오래고, 머리로 하는 일 중에서도 반복적·기계적인 영역은 대부분 컴퓨터에 맡기면 된다. 결국 인간에게 남아 있는 영역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기능'과 '인간관계 기능'뿐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이런 능력을 갖춘 인재상을 '기크(geek·괴짜)'와 '슈링크(shrink·남의 속을 꿰뚫어보는 사람이라는 뜻의 속어)라고 표현했다. 한 가지에 집중해 전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괴짜 또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 정보화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얘기다.

이 같은 창의성과 통찰력의 원천은 인문학이다. 설립한 지 120여년밖에 안된 시카고대가 하버드나 MIT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8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도 다름 아닌 인문학 교육 덕분이다. 이 대학은 1929년부터 1학년생이면 누구나 100권의 인문교양 도서를 읽도록 하는 '시카고 플랜'을 시행해 왔다. 로버트 짐머 시카고대 총장은 "특정 부문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지만, 복잡한 문제를 풀 능력을 갖춘 리더가 되려면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만 한다"고 말한다. 인문학의 위력은 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뒤엉킨 불확실성의 시대에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의사 결정이 인문학에서 말하는 통찰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소양은 요즘 기업 경영의 화두인 윤리 경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소식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일개 사원의 부정한 행위 하나가 거대한 기업을 순식간에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문제는 직원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몰라 일탈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버젓이 비(非)윤리적인 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들에게 왜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대답 역시 철학과 인문학에 있다.

중국 공장에 동상 세운 까닭은

인문학은 기업이 세계화를 추진할 때도 필수적인 소양이다. 밀폐용기 제조업체 락앤락 김준일 회장은 2007년 중국 쑤저우(蘇州)에 현지 생산법인을 세우면서 이 지역 주민들이 춘추전국시대 정치인 오자서(伍子胥)를 숭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회장은 오자서의 후손들과 협의해 공장 안에 오자서의 동상을 지었다. 그러자 14개의 지역 언론들이 '외국기업 최초로 중국 현인의 동상을 세웠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서양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하려면 와인 잔을 어느 방향으로 돌리는 것만 알아서는 안 된다. 그들의 행동양식의 본질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알아야 한다. 중국 전문가가 되려면 중국어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동양 사상의 바탕이 되는 유(儒)·불(佛)·선(仙)을 알아야 한다. 윤리적 문제로 난관에 봉착한 기업도,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고심하는 기업가도, 불확실한 장래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도,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인문학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접목 '하이브리드 MBA' 확산

전통 경영학 배운 MBA 출신들, 문제 해결 방식 한계 드러내

최근 인문학의 인기가 높아지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역설적이게도 서구의 비즈니스 스쿨(MBA)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일련의 경제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경영학의 문제 해결 방식이 한계를 드러내자 경영계가 인문학의 지혜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캐나다 맥길대의 헨리 민츠버그 교수(경영학)는 "MBA 출신들의 문제점은 틀에 박힌 경영학 시험 문제를 재빨리 푸는 것만큼 현실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잘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기존 비즈니스 스쿨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차세대 경영 리더들에게 반드시 인문학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전통적인 비즈니스 스쿨에 철학·역사·문학 등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MBA'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스페인의 IE비즈니스스쿨은 교과목의 3분의 2를 회계·마케팅·조직 등 핵심 MBA 과목을 가르치고 나머지 3분의 1은 미국 브라운대와 제휴해 비즈니스 이외에 건강·윤리·사회 등의 강의를 하는 새로운 코스를 시작했다. 이 대학 데이비드 바흐 학장은 "미래에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사회와 문화를 이해해 적절하게 자원을 배분하고 조직에 닥칠 위험을 계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사회가 온다'는 저서로 유명한 사회학자 다니엘 핑크는 미래사회를 타인과의 감정적 유대 형성, 즉 우뇌적 재능이 중시되는 '하이 콘셉트(high concept)', '하이 터치(high touch)'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는 미래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자질로 디자인·스토리·창조·조화·공감·놀이·의미부여 능력을 꼽는데, 이런 능력들은 모두 인문학적 상상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조사기관인 캐나다 컨퍼런스보드는 경영자들이 인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역량을 다음 네 가지로 꼽았다. '의미 있는 질문 던지기' '체계적으로 보고 생각하기'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실행하기' '큰 그림을 보면서 복잡하고 모순적인 문제 다루기' 등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미래를 내다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와 '질문의 힘'이 인문학이 비즈니스 세계에 던져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