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화재안전기준 개정 현실반영 '미비'

Dr.risk 2010. 9. 10. 23:10

화재안전기준 개정 현실반영 '미비'
현실성 없는 소화기구 설치기준, 반쪽짜리 개선
두손 놓은 전문가 집단 알면서도 침묵으로 일관
 
최영 기자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기의 제도권 도입과 함께 지하구 제어, 분전반의 현실성 없는 소화기구 설치기준이 개선될 전망이지만 반쪽짜리 개정안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청장 박연수)은 7일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기의 제도권 도입과 지하구의 소화기구 설치기준 개선 내용을 주요골자로 한 ‘소화기구의 화재안전기준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 7일 입법예고된 소화기구의 화재안전기준 개정안 
이 개정안에는 최근들어 소화장치로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의 제도권 도입과 설치기준 등을 정하는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지하구 제어, 분전반 상부에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자동확산소화용구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적응성을 갖춘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를 설치하도록 개선했다.

하지만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만을 허용하고 지하구 제어, 분전반에 선택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소공간소화장치는 제외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현재 한국전력 등 지하구 제어, 분전반에는 고체에어로졸자동소화장치와 소공간자동소화장치 등 두 가지 타입의 소화기구가 활용되고 있는데 한 가지 유형의 제품만을 설치토록 개선했기 때문이다.

개정안과 같이 화재안전기준이 수정될 경우 이미 지하구에 설치된 일부 소공간자동소화장치를 고체에어로졸 소화장치로 변경 설치해야 하고 소공간소화장치의 적용을 원하는 대상처는 선택권까지 잃게 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현재 8개 업체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소공간자동소화장치의 KFI인정을 획득해 시중에 유통하고 있지만 개정안과 같이 수정될 경우 이 소공간자동소화장치들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 화재안전기준 담당 부서인 방호과 관계자는 “시도 의견과 전문가 의견까지 수렴을 완료한 상황에서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현재의 소공간소화장치가 KFI인정기준이 아닌 제도적 형식승인 등의 기준에 따라 승인을 받으면 적용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예상된 문제 … 전문가 집단은 ‘묵인?’

이번 화재안전기준개정안은 3월부터 각 시도 및 관련 단체로부터 개정 필요사항을 접수 받아 수 개월간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된 최종안이다.

소방방재청은 전국 17개 시도 소방본부와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소방기술사회 등 관계 전문가들을 통해 개정안에 대한 모든 의견을 수렴했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경우 소공간자동소화장치와 고체에어로졸자동소화장치가 지하구 제어, 분전반에서 실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식적인 의견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방재청 방호과 관계자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서도 전문가를 통한 사전 의견 수렴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소공간자동소화장치에 대한 문제점을 뒤늦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원의 경우는 국내 소방용품의 검정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유일의 기관이자 소공간자동소화장치 및 고체에어로졸자동소화장치의 성능인정 기준을 최초 제정한 전문가 집단이다.

기술원의 실무 관계자 3명은 지난 5월 열린 국가화재안전기준 실무검토위원회에 참석하면서도 개정안에 별다른 이견을 나타내지 않았다.
 
▲ 지난 5월 27일 열린 국가화재안전기준 고시 개정관련 실무검토위원회     © 최영 기자
이 자리에는 소공간자동소화장치의 KFI인정기준 제정을 담당했던 실무자까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검정기관으로써 객관적인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지하구 제어, 분전반 소화기구 문제는?

그동안 지하구의 제어반과 분전반 상부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자동확산소화용구는 ‘불 못끄는 장식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약 280여개를 넘어서고 있는 우리나라 지하구는 지난 2001년부터 관련 규정(소화기구의 화재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의무적으로 자동확산소화용구를 설치해 왔다.

그러나 화재를 초기진화 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 시설물을 관리하는 일부 기관에서는 적응성을 갖춘 소화장치를 추가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중복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 지하구의 제어, 분전반에 설치된 자동확산소화용구 / 현실성 없는 자동확산소화용구가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와 중복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모습     © 최영 기자
지하구 제어, 분전반은 견고한 철제 속 2중 구조의 문이 달려 있고 2~3개의 시건장치까지 체결되어 있어 밀폐공간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외부에서 온도를 감지해 방사되는 자동확산소화용구로 화재를 초기진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지하구에 설치되는 제어반과 분전반의 일부는 천정과의 이격거리가 높게는 3m에 이르는 곳도 있어 시설물 구조상 자동확산소화용구의 설치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대상물을 관리하는 수요처에서는 법적 대상물로 정해져 있는 자동확산소화용구를 어쩔 수 없이 구비하면서도 실질적인 초기소화를 위해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나 소공간 자동소화장치를 추가적으로 선택해 설치하고 있다.

이 소화장치들은 외벽 천정에 부착되는 자동확산소화용구와는 달리 제어반, 분전반 내부에서 발생되는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기구로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자체 기술기준인 KFI인정을 받은 소화장치다.

3년간 미뤄온 문제, 개선되긴 하는데…

현실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관련기준의 개선 필요성은 지난 2007년 본지를 통해 처음으로 제기됐다.

최초 보도 이후 소방방재청의 화재안전기준 담당자는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고 시정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인사이동으로 인해 담당자가 변경되면서 관련규정 개정은 치일피일 미뤄져 왔다.

소공간자동소화장치와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의 지하구 제어반 및 분전반에 자진 설치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수요처의 중복설치 불만은 더욱 거세졌으며 지난해 8월 본지에서는 현장취재를 통해 문제를 또다시 제기했고 이 같은 내용은 2009년 소방방재청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관련규정의 문제점이 드러난지 3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규정 개정이 이뤄질 전망이지만 한 가지 타입의 소화장치만을 제도권에 허용하면서 현실이 반영된 수준은 반토막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놓쳐버린 반쪽, 개정사항 반영해야

▲ 지하구 제어, 분전반 등 전기설비 내부에 설치되고 있는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와 소공간자동소화장치     ©최영 기자
이번에 입법예고된 화재안전기준 개정안은 이미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를 우리나라 제도권으로 도입해 국내 소방산업의 선진화를 이루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크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고체에어로졸 자동소화장치와 더불어 소공간자동소화장치 또한 지하구 제어, 분전반에 설치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방방재청의 화재안전기준 담당자는 두 가지 소화장치가 현재의 KFI인정기준에서 벗어나 형식승인 제도 등의 제도적 검정기준으로 제정되면 수요처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 따라 화재안전기준이 변경되면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서 운용중인 KFI인정기준이 성능시험이나 형식승인 등의 제도적 검정기준으로 다시 제정될 계획이다.

이 때 화재안전기준 개정안에 포함되지 못한 소공간자동소화장치의 기술기준이 상향 제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소공간자동소화장치의 기술기준을 국가적 검정제도로 제정하더라도 지하구 제어, 분전반에 고체에어로졸소화장치와 선택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현실에서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지하구가 아닌 제어반이나 분전반, 변압기 등 전기시설 내부에 자진설비로 적용하고 있는 수요처에서도 제도적 허용여부에 따라 소공간 자동소화장치의 신뢰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될 우려도 크다.
 
이번 개정안은 오는 27일까지 의견수렴 기간을 통해 최종 개정안으로 확정될 계획이어서 수렴 기간을 통해 놓쳐버린 개정사항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