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人文學] 미국을 하나로 이끈 케네디의 `뉴 프런티어` 리더십 | |
![](http://file.mk.co.kr/meet/2011/07/image_readtop_2011_477099_1311318039.jpg)
1988년 미국 대통령선거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부통령 후보 간의 토론에서 공화당 후보가 자신을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에 비유하자, 민주당 후보가 그에게 "미안하지만 당신은 케네디가 아니올시다"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후 "당신은 케네디가 아니다"라는 말은 실제 능력이나 위상보다 더 크게 자신을 치켜세우는 정치인을 비아냥거리는 말이 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다. 1983년 갤럽조사에서는 케네디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은 당을 초월해 자신을 케네디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왜 미국인들은 케네디를 좋아하고 그리워할까? 그것은 케네디가 보여준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 리더십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은 문화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혼돈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 후 평화는 찾아왔지만 냉전구도는 가속되었고, 세계 속의 경찰국가로 자임하는 동안, 미국 내 자유와 평등은 가려져 있었다. 미국의 도심은 황폐화되었고, 빈민자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곳곳에서 폭동과 소요가 일어났다. 미국인들은 심각한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있었다.
케네디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케네디는 국민이 갖는 미국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간파하고 있었고, 국민의 무사안일주의를 걱정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위해 뭔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케네디의 선택은 `뉴 프런티어(New Frontier)`였고, 그중 하나가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었다. `평화봉사단`의 대상은 빈곤에 허덕이는 민족들이었지만, 케네디가 노리는 가장 큰 의도는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뭔가 할 일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가 취임사에서 외쳤던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이는 리더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었다. 대체로 취임사에서 대통령은 새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통례였다. 하지만 케네디는 역으로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능동적으로 찾고 실행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
케네디는 뉴 프런티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열쇠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뉴 프런티어를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의 임기에 뉴 프런티어의 모든 것을 완성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취임사에서 뉴 프런티어가 "100일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1000일 안에도 이룰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의 생애 안에도 이 지구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일단 시작은 해 봅시다"라고 호소했다.
케네디는 대통령으로서 1000일을 보낸 후 암살당하고 말았지만 수천, 수만의 미국 젊은이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유럽, 중남미 등 77개국에서 케네디의 이상을 땀으로 실천했다. 그중의 한 사람이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남 예산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주한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이다. 그녀는 그때가 생애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사건(event)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라고 말하는 스티븐스 대사의 모습에서 케네디의 뉴 프런티어 리더십의 열매를 볼 수 있다.
좋은 리더는 조직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하지만 위대한 리더는 문제를 뛰어넘어 구성원들이 추구해야 할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한다. 뉴 프런티어 정신으로 미국의 당면한 문제를 뛰어넘어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던 케네디의 리더십은 현대 미국을 만들었던 주요한 동력이었다.
[김봉중 전남대 사학과 교수]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다. 1983년 갤럽조사에서는 케네디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은 당을 초월해 자신을 케네디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왜 미국인들은 케네디를 좋아하고 그리워할까? 그것은 케네디가 보여준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 리더십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은 문화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혼돈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 후 평화는 찾아왔지만 냉전구도는 가속되었고, 세계 속의 경찰국가로 자임하는 동안, 미국 내 자유와 평등은 가려져 있었다. 미국의 도심은 황폐화되었고, 빈민자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곳곳에서 폭동과 소요가 일어났다. 미국인들은 심각한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있었다.
케네디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케네디는 국민이 갖는 미국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간파하고 있었고, 국민의 무사안일주의를 걱정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위해 뭔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케네디의 선택은 `뉴 프런티어(New Frontier)`였고, 그중 하나가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었다. `평화봉사단`의 대상은 빈곤에 허덕이는 민족들이었지만, 케네디가 노리는 가장 큰 의도는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뭔가 할 일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가 취임사에서 외쳤던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이는 리더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었다. 대체로 취임사에서 대통령은 새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통례였다. 하지만 케네디는 역으로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능동적으로 찾고 실행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
케네디는 뉴 프런티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열쇠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뉴 프런티어를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의 임기에 뉴 프런티어의 모든 것을 완성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취임사에서 뉴 프런티어가 "100일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1000일 안에도 이룰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의 생애 안에도 이 지구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일단 시작은 해 봅시다"라고 호소했다.
케네디는 대통령으로서 1000일을 보낸 후 암살당하고 말았지만 수천, 수만의 미국 젊은이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유럽, 중남미 등 77개국에서 케네디의 이상을 땀으로 실천했다. 그중의 한 사람이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남 예산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주한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이다. 그녀는 그때가 생애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사건(event)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라고 말하는 스티븐스 대사의 모습에서 케네디의 뉴 프런티어 리더십의 열매를 볼 수 있다.
좋은 리더는 조직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하지만 위대한 리더는 문제를 뛰어넘어 구성원들이 추구해야 할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한다. 뉴 프런티어 정신으로 미국의 당면한 문제를 뛰어넘어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던 케네디의 리더십은 현대 미국을 만들었던 주요한 동력이었다.
[김봉중 전남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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