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기 내부에 시스템 연결해 성능 구현 ‘형식승인 임의변경’
공급 업체 “수차례 문의에도 소방청 외면했다” 억울함 호소
전문가들 “기술 방향성은 동의하나 관련 제도 정비가 먼저”
“시대 변화 따른 소방기술 발전 위해 제도 변화 필요” 시각도
[FPN 최누리 기자] = 원격으로 화재수신기(이하 수신기)의 알림을 확인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의 활용 사례가 늘면서 위법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소방시설의 기능 문제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관련 기술의 구현을 위한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소방시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소방시설 원격 관리 기능을 가진 관리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수신기에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건물 전체로 경보가 울리기 전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관리자에게 화재 경계 구역과 동작 설비 등의 정보를 알려준다. 또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인한 비화재보가 발생하면 앱을 통해 수신기를 복구하는 등 제어가 가능하다.
문제는 시스템이 수신기 내부에 특정 장치를 연결해야만 기능이 구현된다는 점이다. 수신기는 소방 관련법에 따라 반드시 형식승인을 받아야 하는 품목이다. 형식승인 과정에선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부터 그 구조와 재질, 성분, 성능 등이 기준에 적합한지를 검ㆍ인증받는다.
하지만 내부에 새로운 장치 또는 시스템을 설치하거나 연결하면 현행법상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 형식승인을 받은 소방용품의 형상 등을 임의로 변경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 셈이다.
소방 분야 내에서는 원격 제어 방식 기술은 필요하지만 현행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재 시 갑작스러운 기능 이상 등의 문제가 발생하거나 무차별적인 제어가 이뤄질 땐 소방시설의 제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0년간 소방시설을 점검한 한 관계자는 “유사 기술의 발전은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해당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선 수신기와 시스템을 연결해야 하는데 결국 해당 수신기는 형식승인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시스템엔 스마트폰을 통해 외부에서도 수신기를 복구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됐는데 이는 굉장히 무서운 기능”이라며 “건물 CCTV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모니터링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는지 확인할 순 있겠지만 현장 확인 없이 외부에서 수신기를 복구하면 자칫 초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해당 시스템이 대량 설치되는 학교 시설의 경우 1개 회로에 다량의 일반 화재감지기가 물려 있어 정확히 어떤 화재감지기가 작동했는지를 확인하기 힘들다”며 “교실마다 CCTV가 설치되지 않아 실제 화재 여부를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소방청도 소방용품의 형식승인 임의변경은 위법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제품검사를 받고 형식승인을 획득한 소방용품은 당시 형식승인을 받은 성능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며 “형식승인 획득 후 소방용품에 변경이 이뤄지거나 성능이 바뀌면 변경 인증을 받은 뒤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논란의 중심에 선 시스템 개발 업체는 불거진 논란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소방청에 수신기 내부에 해당 시스템을 연결하면 형식 변경에 해당하는지를 몇 차례 질의했지만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받진 못했다”며 “공식적인 답변을 받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의 수신기 옆에는 화재 발생 위치 표시 등의 기능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인 CRT 워크스테이션이 설치되는데 이를 통해 수신기를 제어할 수 있다”면서 “현재 CRT 워크스테이션은 관련 인터페이스 규격이 없어 연결이 허용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사 시스템 역시 CRT 워크스테이션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수신기에도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지난해 소방청 차원에서 이 시스템에 대한 유해성을 검토했는데 유해 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직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수신기의 원격 복구 기능 등에 대해서는 “비화재보에 따른 소방시설 원천 차단 문제를 방지하고 감지기 오작동 시 현장 확인 후 방재실로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기능”이라며 “작동 신호 알림을 앱으로 전달받으면 현장에서 그 여부를 확인한 뒤 수신기를 복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수신기 복구는 1회 한해 가능하고 지속해서 복구할 수 없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시대 흐름에 맞는 소방기술의 발전을 위해선 관련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내비치고 있다.
유사 시스템을 개발한 B 업체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 산업적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소방은 형식승인 등 관련 규정으로 인해 발전 속도가 더디다”며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도 관련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이를 시장에 보급하기 쉽지 않다. 관계기관에 기준 제정 등을 요청해도 어렵다는 말만 돌아온다”고 했다.
이어 “다른 산업처럼 소방 역시 기술 발전이 이뤄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며 “물론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한 규정인 건 인정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에 부응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위법이라는 지적을 내놓은 소방시설 점검업계 관계자는 “해당 시스템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소방의 미래 기술인 건 맞다”면서도 “기술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검증 체계를 마련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한편 원격 관리 시스템을 공급한 A 업체의 경우 제품 설치 과정에서 무면허로 소방시설공사를 도급받아 진행한 사실도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드러났다. 무면허 시공을 맡긴 전남 성전고등학교는 소방시설공사를 발주하면서도 면허 소지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A 업체 측은 “소방 관련법을 잘 몰라 벌어진 일로 처벌을 달게 받고 향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밝혔다.
성전고등학교 계약 담당자는 수의계약 당시 소방시설 관련 공사면허를 확인했는지 묻자 “학교장터에 해당 시스템이 등록됐기에 별도 확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소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365일 안전하게” 학교안전 매뉴얼 제작 (0) | 2024.01.05 |
---|---|
소방시설 내진용 흔들림방지 버팀대, 인증 체계 일원화 (0) | 2023.12.26 |
국가화재평가원, 한국남동발전 화재안전등급 우수사업장 지정 (0) | 2023.12.12 |
김교흥 의원 “소방시설설계ㆍ공사감리 분리 도급해야” (0) | 2023.12.12 |
소방안전관리 업무 전담 법률, 시행 1년 만에 회귀 움직임… 도대체 왜? (1) | 2023.12.12 |